이렇게 해서 1주일 뒤 국무조정실은 각 부처가 제시한 목표를 취합했다. 당시 김동연 국무조정실장이 사석에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각 부처가 올린 목표 숫자를 합산해보니 고용률이 80%가 넘었다. 코미디였다. 이런 식의 숫자관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연초부터 고용지표가 외환위기 이후 최악으로 나오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전 부처가 합심해 1분기까지 90만 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정부가 부처별로 할당량을 정해 압박에 들어갔다. 7년 전과 판박이다.
숫자로 목표를 관리하는 것은 기업이나 정부나 다를 게 없다. 역대 정부치고 숫자관리에 목매달지 않은 정부는 없었다. 하지만 매번 실패로 돌아갔다. 기업이야 사업환경을 치밀하게 분석해 목표를 세운 후 생사를 걸고 덤벼들지만, 공무원들은 보여주기식 숫자에 능한 까닭에 목표를 제시할 때부터 달성이 불가능하단 걸 스스로 안다.
이명박 정부 때 747공약(경제성장률 7%, 1인당 소득 4만달러, 7대 선진국 진입)이나 박근혜 정부 당시 474비전(잠재성장률 4%, 고용률 70%, 1인당 소득 4만달러)이 그랬다. 출발은 창대했지만, 얼마 못 가 달성 불가 판정을 받고 조용히 깃발을 내렸다.
역대 정부의 물가관리도 숫자 목표 채우기에 급급한 결과 성공한 적이 없었다. 박정희 정권은 물가목표제를 두고 물가와의 전쟁을 치렀으나 매번 두 손을 들어야 했다. 찍어누르기식 물가관리는 잠시 효과를 보는 듯하다가도 이내 부작용만 초래하기 일쑤였다. 물가관리가 딱 한 번 먹혀든 것은 1982년이었다.
전두환 정권 들어 당시 김준성 부총리 주도로 가격 자유화 정책을 도입했다. 물가목표제 폐지였다. 숫자 목표를 없애자 두 자릿수 고공행진하던 물가는 처음으로 한 자릿수로 안정되기 시작했다. 시장의 수요와 공급 원리에 맡긴 게 비결이라면 비결이었다.
고용 역시 숫자로 관리해선 성공하지 못한다. 대통령이 숫자로 일자리 목표를 제시하는 순간 공무원들은 잔머리를 굴리고, 결론은 엉뚱한 방향으로 치닫는다. 목표를 채우기 위해 아르바이트나 초단기 노인 일자리만 양산하는 게 대표적이다. 이른바 고용 분식(粉飾)이다. 그렇게 해서 끌어올린 고용 숫자는 몇 달도 못 가 허망하게 무너진다. 혈세만 낭비하는 꼴이다. 이 정부 들어 일자리 정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 식이었다.
일자리 정책은 숫자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 대통령도 수차례 “양질의 일자리는 기업에서 나온다”는 정답을 이미 제시했다. 민간 투자를 유도하고, 신산업에 대한 규제를 풀고, 고용 유연성을 높이면 기업들은 알아서 채용문을 활짝 연다.
문 대통령의 집무실에는 아직도 일자리 상황판이 걸려 있다. 취임 후 첫 업무지시로 일자리위원회를 만들고 곧바로 설치한 것이다. 대통령은 매일 숫자를 챙겨본다고 한다. 그럼에도 일자리 숫자가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최악으로 치닫는 것을 보며 조바심이 날 것이다.
지난 4년간 대통령의 일자리 상황판 숫자 관리는 양질의 일자리는 파괴하고, 단기 일자리만 늘리는 역설을 낳았다. 보여주기식 숫자정치, 이제 그만할 때도 됐다.
jtch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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