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고미술 시장은 긴 침체기를 겪어왔다. 주택에서 아파트 중심으로 주거생활이 바뀌면서 인기의 중심축이 현대미술로 쏠렸다. ‘큰손’들의 거래도 주춤했다. “고미술은 박물관 등 정부기관, 마니아층이 매매를 주도하는 것이 현실인데 최근 몇 년 사이 미술시장의 자금이 현대미술에 치중되면서 고미술이 소외됐다”는 게 미술품 경매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분위기가 달라졌다. 올 들어 열린 경매에서 고미술품이 치열한 경합 끝에 고가로 낙찰되는가 하면 전시장에도 방문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이 미술시장 전반을 새로운 투자처로 주목하는 가운데 그동안 저평가돼온 고미술로 미술 애호가들의 관심이 확장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호탄은 경매시장이 쏘아 올렸다. 지난 1월 20일 열린 케이옥션의 첫 메이저 경매에서 단원 김홍도의 ‘탑상고사도(榻上高士圖)’가 7000만원에 호가를 시작해 1억1500만원에 낙찰됐다.
지난달 23일 열린 서울옥션 메이저 경매에서는 열기가 한층 뚜렷해졌다. 출품된 고미술품 187점 가운데 169점이 새 주인을 찾아 낙찰률 90%, 낙찰총액 약 110억원을 기록했다. 1억원에 호가를 시작한 청전 이상범의 수묵화 ‘귀로’는 치열한 경합 끝에 4억2000만원에 낙찰됐다. 이날 경매의 고미술 분야 최고가이자 작가의 최고 기록을 경신한 금액이다. 200만원으로 경매를 시작한 ‘민화산수도(民畵山水圖)’는 10배가 넘는 2200만원에, 3000만원에 시작한 ‘백자 청화운룡문접시’는 7800만원에 낙찰됐다.
일반인의 관심도 크게 늘어났다. 서울 경운동 다보성갤러리가 지난달부터 홈페이지에서 열고 있는 온라인 전시 ‘한중일 삼국의 문화유산’도 인기다. 다보성갤러리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고미술품을 보유하고 있는 전문 화랑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높이 52㎝로 현존 최대 크기의 달항아리, ‘중국의 피카소’로 불리는 치바이스(齊白石)의 화첩과 인장 등 희귀성이 높은 작품을 공개해 인기를 끌고 있다. 삼국시대 청동합, 중국 서주시대 왕실 제기로 사용된 ‘청동금문반’과 배 위에 궁궐을 상징하는 기와집 한 채가 세워진 한대의 ‘녹유선(綠釉船)’, 일본 에도시대의 회화와 도자기 등 볼거리가 풍부하다. 실물을 보기 위해 갤러리를 직접 찾아오는 사람이 하루 100~150명이라고 한다.
크리스티코리아가 뉴욕 경매를 앞두고 선보인 프리뷰에서도 고미술에 대한 열기가 감지됐다. 크리스티코리아에 따르면 지난달 24~26일 공개된 ‘백자유개호’ ‘분청사기철화초화문편병’ ‘청화백자추초문호’ 등 세 점을 보려는 발길이 이어져 매 시간 예약이 다 찼다.
오랜만에 불어온 훈풍에 고미술계도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다보성갤러리는 온라인 전시 외에도 네이버 밴드, 홈쇼핑, 경매 등으로 판매 루트를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네이버 밴드에 고미술품을 올려 판매해왔고, 온라인 전시에 이어 현장 경매, 유튜브 및 홈페이지에서의 실시간 경매도 준비하고 있다. 김종춘 다보성갤러리 대표는 “고미술 시장이 활성화되고 문화재 향유 문화가 확산되려면 애호가들이 더욱 쉽게 고미술을 만나고 접할 수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서 준비한 서비스”라고 설명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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