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꼽히는 노원구 ‘백사마을’(조감도)이 도시재생과 재개발을 결합한 방식으로 재정비된다. 기존 골목길을 보존하고 아파트와 주택을 결합하는 새로운 형태의 재개발이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사장 재임 시절 주도했던 사업이라는 점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개발형 도시재생사업의 성공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백사마을은 일반적인 재개발과 달리 단독주택과 아파트가 어우러진 주거지 보존 방식이 적용된다. 아파트는 지하 5층~지상 최고 20층, 34개 동, 전용면적 59~190㎡, 1953가구로 지어진다. 일반주택은 주거지 보전사업으로 지하 4층~지상 4층의 다세대주택 136개 동, 484가구가 들어선다. 전용면적은 30~85㎡ 미만이다. 9명의 건축가가 각기 다른 디자인으로 다양한 층수의 아파트와 일반주택을 적절히 배치해 자연경관을 살리고, 골목길 등 기존 지형을 일부 보존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도록 했다고 노원구는 설명했다.
지역 역사를 보전하기 위한 시설도 들어선다. 전시관에 각종 생활 물품과 자료, 행사 잔치 인물 등의 사진을 수집 및 전시해 예전 동네 모습과 마을 주민들의 삶의 기억을 보전할 계획이다. 올해 하반기 시공사를 선정한 뒤 2022년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거쳐 착공할 계획이다. 2025년 상반기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백사마을은 1967년 도심 개발로 청계천·창신동·영등포 등에서 강제 철거당한 주민이 이주하면서 형성된 주거지다. 2009년 주택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돼 개발이 가시화되는 듯했다. 그러나 사업성 문제, 건축 방식을 둘러싼 갈등 등으로 사업이 지연돼왔다. 오승록 노원구청장은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율하기 위해 갈등조정 전문가를 현장에 파견하고 총 33회에 달하는 회의와 심의를 거치는 등 행정력을 적극 동원했다”고 말했다.
1971년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된 백사마을은 2008년 서울시가 그린벨트를 해제하면서부터 본격적인 개발 논의가 시작됐다. 2011년 9월 ‘주거지 보전구역’으로 지정돼 지역 원형을 최대한 살린 재개발 방식이 결정됐다. 하지만 2016년 1월 사업시행자였던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사업성이 없다며 손을 떼면서 원점으로 돌아갔다.
재개발에 다시 불이 붙은 것은 2017년 7월 변 장관이 사장으로 있던 SH공사가 공공사업시행자로 나서면서다. 골목길 보존, 아파트와 주택이 결합된 개발 방식도 그때 결정됐다. 재개발에 도시재생을 접목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다른 정비사업에도 파급효과를 미칠 것으로 서울시는 기대하고 있다. 정비업계에선 홍제동 개미마을 등이 비슷한 방식의 개발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류훈 서울시 도시재생실장은 “백사마을은 상생형 주거지 재생의 새로운 모델”이라며 “주택 공급과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다양한 유형의 재생 모델을 발굴하고 행정 지원에도 적극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변 장관은 취임 후 처음으로 내놓은 ‘2·4대책’에서도 도시재생사업 방식을 대폭 개선해 주택 공급을 활성화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보존 중심이던 도시재생사업의 방향을 개발로 선회해 5년간 약 3만 가구(서울 8000가구)를 공급하겠다는 목표다. 쇠퇴 지역에 지구단위 주택정비를 추진하는 ‘주거재생혁신지구’, 정비사업과 도심공공주택 복합사업을 연계한 ‘주거재생 특화형 뉴딜사업’ 등을 새로 도입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구역 특성에 맞는 맞춤형 개발 방식을 적용해야 도시재생을 통한 주택 공급이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천현숙 SH도시연구원장은 “주민들이 보존을 원하면 도시재생을 하고, 협의가 어려운 도심지엔 공공재개발을 적용하는 등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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