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기 회복세가 가팔라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공포가 누그러진 데다 1조9000억달러에 달하는 ‘슈퍼 부양책’ 시행도 유력해지면서다.
미 공급관리협회(ISM)가 1일(현지시간) 발표한 지난달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60.8로 전달(58.7)보다 2.1%포인트 상승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전문가 예상치(58.9)를 크게 웃돌았다. PMI가 기준점(50)을 넘으면 경기 확장, 이를 밑돌면 위축으로 판단한다.
ISM의 제조업 PMI는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선언 이후인 지난해 4월 41.7로 바닥을 찍었지만 그 뒤 서서히 회복해왔다. 지난달엔 18개 제조업종 중 전자제품, 화학, 목재 등 16개 업종에서 지수가 상승했다. 인쇄와 석유업종만 위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정보제공업체 IHS마킷이 내놓은 2월 제조업 PMI 최종치도 58.6으로 예비치(58.5)를 웃돌았다. 마킷 PMI는 2010년 4월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후 최고였던 올 1월(59.2)에 이어 두 번째로 강한 증가세를 기록했다. 크리스 윌리엄스 IHS마킷 수석이코노미스트는 “2개월 연속 올랐다는 건 미국 경제가 잃어버렸던 자신감을 거의 회복했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미 상무부가 이날 공개한 1월 건설 지출 역시 전달 대비 1.7% 증가했다. 시장 전망(0.8%)을 크게 뛰어넘은 수치다. 앞서 상무부는 올해 1월의 소매판매 실적이 전달에 비해 5.3% 늘었다고 밝혔다. 소매판매는 작년 9월 이후 4개월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이달부터 코로나19 백신 공급이 대폭 확대될 예정이어서 미 경제가 더욱 활기를 띨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 보건당국은 이날 존슨앤드존슨(J&J)이 개발한 백신의 긴급 사용을 승인했다. 화이자·모더나 백신에 이어 세 번째다. J&J 백신은 한 번 접종으로 항체를 형성한다.
미국 내 코로나19 감염·입원·사망률은 이미 눈에 띄게 감소해왔다.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최근 7일간의 평균 감염률은 직전 기간 대비 13.5%, 입원율은 11.3%, 사망률은 23.8% 줄었다. 백신 접종뿐만 아니라 자연 면역 효과도 적지 않았을 것이란 분석이다.
지금까지 백신을 한 차례라도 접종한 미국인은 5073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5.5%에 이른다. 화이자와 모더나가 백신 생산량을 늘리고 있는 데다 J&J도 이달 말까지 2000만 회분을 공급할 계획이어서 집단 면역을 조기 달성할 수 있으리란 기대도 나온다.
대규모 부양책도 이달 중순 집행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원은 지난 주말 미국인 한 명당 1400달러를 지급하는 내용 등을 골자로 한 부양법을 가결해 상원으로 넘겼다. 상원은 일부 민주당 의원조차 반대했던 최저임금 인상안을 제외한 뒤 나머지 법안을 표결에 부칠 예정이다. ‘예산 조정권’ 적용을 받는 새 부양법은 과반수 찬성을 얻어 무난히 통과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인 토머스 바킨 리치먼드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WSJ와의 인터뷰에서 “지평선에서 막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며 “소비와 부동산, 제조업, 기업 투자 등 모든 부문이 살아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긍정적인 경제 전망을 고려하면 국채 금리의 최근 상승세가 놀랍지 않다”며 “팬데믹 이전과 비교하면 채권 수익률이 여전히 낮기 때문에 경제에 위협이 되지도 않는다”고 강조했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데이비드 코스틴 미국 주식 담당 책임자도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연 2.1%로 뛰기 전까지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고 단언했다. 이날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전날보다 0.01%포인트 오른 연 1.45%로 마감했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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