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 킴(Bom Kim)’은 2016년까지만 해도 국내외 언론과 비교적 활발하게 인터뷰를 했다. 그는 자신과 쿠팡을 향해 쏟아지는 수많은 의문과 의심을 불식시키는 데 열의를 쏟았다. 이를테면 ‘수조원의 적자를 내면서 무슨 수로 미국에 상장하나’ 같은 질문이 그를 괴롭혔다.
하지만 젊은 창업가의 설득은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오기 일쑤였다. 어느 순간, 김 의장은 ‘불신자’들을 더 이상 설득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실력과 결과로 증명하겠다는 듯, 그는 외부와의 단절을 택했다. 그로부터 약 5년이 흘렀다. 쿠팡은 이달 11일 뉴욕증권거래소에 최대 510억달러의 가치로 상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김 의장은 적어도 자신이 ‘신기루’가 아님을 입증하고 있다.
그렇다고 쿠팡에 관한 의문이 모두 해소됐다고 할 수는 없다. 여전히 증명해야 할 것이 많다. ‘아마존의 아류’, 그 이상을 보여줄 수 있느냐에 대한 물음이다.
김 의장은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상장신청서에서 쿠팡을 ‘100년 기업’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이조스가 2017년 봄 약 2만 명이 운집한 키 아레나 총회에서 “데이 투(Day 2)는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과 닮았다. 처음부터 ‘데이 원’의 정신으로 100년 넘게 가는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의미다.
김 의장은 ‘베이조스의 언어’를 즐겨 사용한다. “고객에게 광적으로 집착하라”는 베이조스의 명제를 김 의장은 “소비자가 우리보다 똑똑하다”는 말로 바꿔 말한다. 눈앞의 경쟁 기업이 아니라 소비자 불편을 없애는 데 집중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그럼에도 두 사람 간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꿈의 크기’다. 베이조스 역시 창업 초기, 적자 논쟁에 끊임없이 휘말렸다. 외부의 통렬한 비판에 그는 몽상가에 가까운 그만의 ‘장기적인 비전’으로 맞섰다. ‘모든 것들이 장기적이다’는 부제가 달린, 1998년 초 주주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베이조스는 “단기적인 수익이나 단기적인 반응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썼다. 시장과 투자자는 베이조스의 선견지명을 신뢰했다. 아마존은 AWS라는 세계 최대 클라우드 컴퓨팅 기업을 탄생시켰고, 우주 개발기업 블루오리진을 설립했다.
쿠팡의 미국 증시 입성은 ‘한국의 아마존’이란 인식 덕분이라는 게 미 언론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김 의장이 ‘100년 쿠팡’을 만들기 위해 어떤 꿈을 그리고 있는지는 현재로선 알기 어렵다. 그는 여전히 외부에 그의 비전을 밝히기를 꺼린다.
어쩌면 그는 베이조스가 아니라 앤디 제시와 더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작년 말 아마존의 새 수장에 오른 제시는 베이조스 곁을 오래 지키며 그의 사고와 행동 방식을 흡수한 ‘베이조스 아바타’다. 아마존의 성공 방정식 중 하나로 ‘아류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철칙이 꼽힌다. ‘아마존 웨이(way)’로 성공을 거두고 있는 쿠팡이 이 모순을 어떻게 극복할지 지켜볼 일이다.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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