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설립된 하나투어 노조가 사측이 2000명이 넘는 직원에 대한 인력감축 방침을 이미 사전에 정하고 구조조정을 진행해왔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작년 3월부터 시행 중인 유급·무급휴직은 고용유지보다 인력감축을 위한 사측의 '명분쌓기'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하나투어는 그동안 인력 구조조정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사실무근"이라며 강하게 부인해왔다.
6일 하나투어 노조 관계자는 "올 1월 회사가 희망퇴직 시행 과정에서 본부장과 팀장급 간부들에게 구조조정 계획을 공유한 사실을 노사협의체인 '하나투어발전협의회(하발협)' 관계자로부터 들었다"며 "그런데도 사측은 사전에 인력감축을 계획하지 않았고 퇴직 합의 과정에서 관여한 적이 없다며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대 주주인 사모펀드 IMM프라이빗에쿼티(PE)가 코로나 사태로 인한 경영난을 이유로 자신들이 원하던대로 사업 및 인력 구조조정을 진행해왔다는 게 노조 측 주장이다.
토종 사모펀드인 IMM PE는 작년 2월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신주 232만3000주를 1289억2650만원에 인수하는 방식으로 하나투어 최대 주주가 됐다. 현재 하나투어 지분은 IMM PE가 세운 특수목적법인 하모니아1호 유한회사가 16.7%, 설립자인 박상환 전 회장이 7.83%를 보유하고 있다. IMM PE가 인수하기 전 박상환 전 회장과 공동대표를 맡았던 김진국 대표와 지난해 3월 선임된 송미선 대표가 공동대표를 맡아 경영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급여 '제로(0)'의 무급휴직으로 전환할 당시에도 하나투어는 "경영 정상화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일 뿐 정리해고 등 인력감축을 염두하고 있지 않다"며 인력 구조조정 가능성을 전면 부인했다.
하나투어는 현재 전체 2300여명 가운데 필수인력 200여 명을 제외한 2000명 이상의 직원들이 지난해 12월부터 이달 말까지 무급휴직 상태다. 업계 2위인 모두투어를 비롯해 대부분 여행사들이 정부 고용유지지원금으로 유급휴직을 시행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아홉 달의 유급·무급휴직 기간 동안 하나투어가 고용유지지원금 명목으로 받은 정부 보조금 규모는 단순 계산으로도 최대 200억원이 넘는다. 노조 주장대로 경영진이 국민 세금인 정부 보조금을 구조조정의 도구로 활용했다면 도덕성 논란이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해 3분기 공시자료 기준 하나투어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 규모는 1141억원이다. 한화투자증권은 하나투어가 무급휴직에 들어가기 전인 지난해 5월, 매출이 하나도 없는 상태로 버틸 수 있는 한계시점을 2021년 12월로 예상했다.
지난해 적자투성이던 면세점 사업을 접은 하나투어는 고강도 사업 구조조정을 통해 54개에 이르던 자회사와 국내외 지사를 절반 이상 정리한 상태다. 서울 인사동 본사 사옥과 명동 티마크호텔, 남대문 티마크그랜드호텔 매각도 진행 중이다. 면세점과 호텔, 부동산, 식음료, 문화·공연, 대부업 등으로 사업을 확장해온 하나투어는 지난해 코로나 상황에서 1200억원에 육박하는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박순용 하나투어 노조위원장은 "그동안 고용을 보장한다던 박상환 전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지난해 6월 이후 아무런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며 "사실상 이때부터 인력 구조조정 방침을 세워놓은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위원장은 이어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을 경우 회사가 부담하는 직원 급여는 월 16억원 수준으로 회사가 보유한 400억원의 자사주만 처분해도 최소 2년은 버틸 수 있다"며 "무책임, 무능력한 경영진이 자신들 손에 쥔 것을 잃지 않으려 힘없는 직원들만 희생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박 위원장은 "회사가 정한 퇴직 대상자와 면담과정에서 일부 간부들은 '지금 결정하지 않고 버티더라도 언젠가는 회사가 강제로 정리해고를 할 것'이라며 직원들을 압박하고 선택을 강요했다"고 지적했다. 하나투어는 대외적으로 희망퇴직으로 알려진 인력감축을 위해 각 부서별 대상자에게 개별적으로 계열사 전직, 4~6개월치 급여를 받는 조건의 퇴직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까지 이달 31일자로 회사를 나가는 퇴직자와 전직자 규모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하나투어 측이 정확한 규모에 대해 일절 함구하고 있는 가운데 노조와 업계 사이에서 전체 직원의 절반 수준인 800~1000명에 이를 것이라는 추측만 무성하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투어는 종전 입장을 바꿔 "회사는 그동안 희망퇴직이나 정리해고라는 말을 사용한 적이 없다"는 애매한 답변을 내놨다. 온라인 기반 트레블테크 회사로 전환하면서 바뀌게 될 직무환경을 알리고 그에 따라 선택할 수 방안을 제시한 것 뿐이라는 것이다.
박 위원장은 "다른 경쟁회사의 70~80% 수준에 불과한 급여를 받으면서도 업계 1위 여행사라는 자존심 하나로 버텨온 직원들을 회사는 헌신짝 버리듯 내동댕이 치고 있다"며 "퇴직자에 대한 위로금 지급 방침까지 세운 회사가 정리해고가 아니라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꼬집었다. 하나투어 입사 21년차인 박 위원장은 이달 31일부로 하나투어 계열사 중 하나인 하나비즈로 전직 발령이 난 상태다.
노조는 지난 3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하나투어 경영진에 대한 시정명령을 요청한 상태다. 노조가 지난달 말 정식으로 교섭을 신청했지만 회사 측이 단체교섭 공지는 물론 대화에도 응하지 않고 있어서다. 현행 노동조합법상 회사는 단체교섭 요구를 받은 날부터 7일간 사업장 게시판, 사내 통신망 공고를 통해 교섭요청 사실을 알려야 한다.
회사 측은 노조 교섭신청에 대해 "유권해석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모든 사항을 기존 노사 협의체와 논의해온 상황에서 새 노조와 대화에 나서는 게 적절한 지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지난 2일자로 고용노동부에 유권해석을 요청한 상태로, 정부 측 회신 결과에 따라 노조와 대화에 나설 지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는 현재 진행 중인 무급휴직이 끝나고 구조조정 대상자가 퇴사하는 시점인 이달 31일이 하나투어 구조조정의 '디데이'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경영진이 협의 대상으로 꼽는 하나투어발전협의회 직원 대표들의 임기도 이달 31일자로 만료된다.
노조 측은 "회사가 정부의 유권해석을 핑계로 구조조정 대상자가 퇴사하는 이달 31일까지 버티기 위해 시간끌기에 들어갔다"며 "경영진은 하루 빨리 노조의 대화요구에 응해 2000여명의 하나투어 직원에 대한 고용 보장과 함께 경영 정상화를 위한 논의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하나투어 경영진이 의뢰한 노조 교섭신청에 대한 유권해석은 현재 고용노동부에 접수돼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고용노동부 노사관계법제과 관계자는 "결론을 내려면 자세한 사항을 확인할 필요가 있지만 기존 노사 협의체가 법적으로 정식 설립인가를 받지 않았을 경우 사측은 노조의 대화요구에 응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이선우 기자 seonwoo.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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