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전 총장은 지난 4일 사퇴 입장문에서 “앞으로도 제가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와 국민을 보호하는 데 온 힘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른바 ‘별의 순간’에 자신이 지켜야 할 가치로 자유민주주의를 국민보다 앞세운 발언이었다.
윤 전 총장의 자유민주주의론은 검찰총장 재임 당시는 물론, 그의 검사 인생과 지식인으로서의 삶을 관통하는 정치·경제 철학으로 알려져 있다. 문재인 정부의 반(反)자유주의적인 성향을 목도하면서 윤 전 총장의 신념이 더욱 굳어졌다는 게 주변 인물들의 전언이다. 윤 전 총장이 앞으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안티 테제(반정립)’로서뿐만 아니라 향후 자신만의 정치 캐치프레이즈로 자유민주주의를 전면에 내세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윤 전 총장의 취임사는 검찰 내에서도 화제가 됐다. 한 검찰 관계자는 “전임자인 문무일 전 총장이 단순히 ‘민주주의’를 언급했던 것과 비교하면 윤 전 총장의 ‘자유민주주의’ 언급은 차별화가 된다”며 “검찰총장의 철학에 경제학자들의 사상이 반영됐다는 배경 설명도 이례적이었다”고 했다.
민주주의가 ‘법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느냐’는 방법에 관한 문제라면, 자유주의는 ‘개인을 규율하는 법이 어떠해야 하느냐’는 문제를 다룬다. 개인의 자유, 사유재산권 보장, 작은 정부, 법의 지배를 핵심 가치로 삼는다. 윤 전 총장이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구별해서 썼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큰 이유다.
윤 전 총장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은 부친인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전 한국경제학회장) 영향이 큰 것으로 전해진다. 윤 명예교수가 1979년 윤 전 총장이 서울대 법대에 입학할 때 프리드먼의 저서 《선택할 자유》를 선물로 줬다는 일화도 있다. 윤 전 총장은 평소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이 책을 꼽는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윤 전 총장이 자유민주주의를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한 채 단순히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반발로 꺼내든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내놓고 있다. 현직 공무원으로서의 한계가 있긴 했지만, 윤 전 총장이 검찰 권력 축소 외에 문재인 정부의 반자유주의적인 통치 행위에 반기를 든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현행 헌법 4조에 명시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서 ‘자유’를 떼내려고 했던 문재인 정부 초기의 개헌 시도에 대해 법조인 윤 전 총장은 그동안 어떤 의견도 내지 않았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미국 정치권에서는 ‘미제스를 읽었다며 떠벌리는 정치인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다”며 “앞으로 윤 전 총장이 문재인 정부의 임대차 3법, 경제민주화 등 경제 정책 전반에 대해 어떤 목소리를 내는지 눈여겨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윤석열 사단’의 수사는 잔혹하기로 유명하다”며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는 윤석열 사단이 맡은 다른 대형 사건 수사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안팎에서는 윤 전 총장이 측근인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현 정권의 수사 등으로 깨달은 바가 많았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한 검사장 수사와 관련해 현직 언론인이 ‘강요미수죄’ 명목으로 구속되는 전대미문의 일이 벌어지면서 언론 자유 침해 등 각종 논란이 불거졌다”며 “윤 전 총장도 정치적인 수사나 반기업 정서에 기댄 수사와 관련해 문제점을 인식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퇴 사흘만에 외부 활동…與野, 일거수일투족 '촉각'
윤 전 총장은 이날 오전 서울 서초동에 있는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을 찾은 모습이 언론에 잡혔다. 코바나컨텐츠는 윤 전 총장의 부인인 김건희 씨가 운영하는 전시·공연기획사다. 윤 전 총장 자택과 이어진 주상복합건물 상가에 사무실이 있다. 법조계에선 윤 전 총장이 이곳을 사무실로 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윤 전 총장은 당분간 외부활동을 자제한 채 향후 계획을 구상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서는 외부 강연이나 SNS 등을 통해 중대범죄수사청 입법과 관련해 어떤 방식으로든 목소리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사퇴 사흘째인 이날도 ‘윤석열’ 이름이 끊임없이 오르내렸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윤 전 총장에게 많은 야권 지지자의 마음이 모여 있다”며 “성급하게 정치를 시작하기보다 국정 전반에 걸쳐 상세하게 살펴보고, 문제점을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 내가 만들고 싶은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떤 건지 비전을 열심히 준비하면 좋겠다”고 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문재인 정부는) 윤 전 총장을 1년에 걸쳐 두들겨 패서 쫓아냈다”며 “어느 정신 나간 검사가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겠다고 나서겠느냐”고 비판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나는 ‘윤석열 검찰’이 2019년 하반기 문재인 정부를 ‘살아있는 권력’이 아니라 ‘곧 죽을 권력’으로 판단했고, 방향 전환을 결정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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