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스마트폰용 반도체가 품절됐다. 그냥 모자란 게 아니라 ‘극심하게’ 부족하다.”
류웨이빙 샤오미 부회장(중국 지역 대표)이 지난달 24일 중국 SNS 웨이보에 올린 글이다. 샤오미는 세계 3위(작년 4분기 기준 점유율 11%) 스마트폰 업체로 상당한 ‘바잉파워(구매 협상력)’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재고가 바닥난 스마트폰용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가 들어가는 모델을 단종시키고 있다. 업계에선 “반도체 쇼티지(품귀)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모델별로 차이가 있지만 퀄컴의 스냅드래곤 AP 리드타임은 약 30주, 블루투스 칩은 약 33주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 퀄컴에 주문을 넣으면 7~8개월 뒤에야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세계 7위 스마트폰 업체 중국 리얼미의 고위관계자는 최근 “퀄컴의 AP, RF(무선주파수)칩이 바닥났다”고 밝혔다.
‘퀄컴 쇼티지’의 1차 원인으론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의 공격적인 제품 출시가 꼽힌다. 세계 2위까지 치고 올라왔던 화웨이가 미국 제재로 힘을 잃으면서 샤오미, 오포, 비보, 리얼미 등이 보폭을 넓히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화웨이의 스마트폰 출하량은 1억8770만 대로 21% 감소했지만 샤오미 출하량은 1억4580만 대로 전년 대비 17% 늘었다. BBK그룹 산하 오포, 비보, 리얼미의 연간 출하량 합계는 2억6270만 대로 삼성전자(2억5570만 대)를 처음으로 제쳤다.
화웨이와 달리 샤오미, 오포 등은 반도체 개발 능력이 없어 미국의 퀄컴에 주문이 몰렸다. AP를 자체 생산하는 애플도 핵심 부품인 5G 모뎀칩은 퀄컴에 100% 의존한다. 그러나 퀄컴은 생산시설이 없어 삼성전자, TSMC 같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에 생산을 맡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소비가 살아나면서 AP뿐만 아니라 PC, 게임기, 인공지능 기기용 반도체 등을 생산해달라는 주문이 몰리면서 퀄컴 칩의 리드타임이 30~33주까지 늘어났다.
삼성전자 미국 오스틴 파운드리 공장이 2주 넘게 ‘셧다운(가동 중단)’ 상황인 것도 공급 부족에 기름을 부었다. 오스틴 공장에선 퀄컴의 AP, RF칩 등을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AP 시장이 ‘공급자 우위’로 돌아서면서 업체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퀄컴과 미디어텍 등 칩을 설계·판매하는 팹리스와 TSMC 등 파운드리 업체들은 15~20% 수준의 단가 인상에 나섰다. 반면 중국 스마트폰 업체엔 ‘원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 업계에선 “칩을 확보할 수만 있으면 가격은 문제가 안 되는 상황에 몰렸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샤오미 등 일부 스마트폰 업체는 중동,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재고가 바닥난 칩이 들어가는 중저가 모델을 단종시키고, 재고가 남아 있는 칩이 들어가는 모델을 긴급 투입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스마트폰 생산량이 감소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TSR에 따르면 지난해 6월부터 7개월 연속 증가(전월 대비)했던 글로벌 스마트폰 출하량은 올 1월 6.0% 감소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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