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ESG 경영 위한 '넛지 정책' 필요하다

입력 2021-03-09 17:52   수정 2021-03-10 00:05

최근 ‘ESG 경영’이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기업경영에서 환경과 사회적 역할, 지배구조의 투명성과 윤리성을 강조하는 것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다. 기업의 이미지와 브랜드 강화를 위해 강조돼온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에서 나아가 기업을 둘러싼 소비자, 주주, 지역, 환경을 두루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ESG 경영의 지향점이다. 기업의 재무적 성과만을 판단하던 전통적 방식과 달리,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 가치와 지속가능성에 영향을 주는 환경, 사회, 지배구조 등의 비재무적 요소도 기업 평가의 중요한 잣대가 됐다.

지난해 초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화석연료로 25% 이상의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들은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제외하겠다는 투자 전략을 깜짝 발표했다. ESG를 투자의 중요 기준으로 재정립함과 동시에 기업의 지속성장을 담보할 가치로서의 중요성을 인식시켜주는 계기가 된 이벤트였다. 이제 기업이 투자를 받기 위해서는 ESG 경영이 필수가 된 시대다.

이런 경영 트렌드 변화의 이면에는 주요국 그린 정책 도입 움직임도 한몫하고 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이미 파리협정 이행 복귀를 선언했고, 기후 대응 및 청정에너지에 대한 청사진을 언급했다. 영국, 프랑스 등 유럽국가들도 친환경 자동차 보급과 에너지 프로젝트 지원 등 녹색이행을 위해 총 경기부양책의 37% 규모에 달하는 예산을 계획했다.

또 주요국들은 ESG의 규범화와 표준화 제도를 본격 추진하고 있다. 유럽 기업들은 올해부터 유럽연합(EU) 분류체계에 의해 환경, 기업 투명성, 인권 등과 관련한 비재무적 요소 공시가 의무화됐다. 영국도 기후변화재무정보공개 태스크포스 권고안에 따라 모든 상장기업의 기후 관련 재무정보 공개를 의무화할 예정이다. 피치, 무디스, S&P 등 국제신용평가사들은 발빠르게 ESG를 기업 신용평가에 반영하며 요구 기준을 강화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적으로 ESG 경영은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됐다. 최근 몇 년 사이 국내 기업들도 빠른 속도로 ESG 경영을 도입하며 신경영전략으로의 전환기를 겪고 있는 듯하다. 기업의 정기 주주총회에서 ESG 관련 안건이 오르고, 관련조직을 신설 강화하는 등 기업들은 분주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ESG 중심의 경영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돼가고 있다.

기업들이 직면할 어려움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ESG 기준 및 규제 강화는 기업들이 관리해야 하는 중요한 리스크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우선 기업의 비용문제다. 환경적 가치를 반영한 비즈니스 포트폴리오의 변화와 트렌드 대응에는 단기적으로 막대한 비용이 들 가능성이 있다. 전문가의 조언과 벤치마크의 필요성이 강조되는 이유다. 제도적 설계도 중요하다. 투명한 평가체제 구축뿐만 아니라 기업들에 인센티브와 시간을 주는 ‘넛지(nudge)식 정책’을 먼저 고려해야 마땅하다.

미국의 유명 경제학자 피터 번스타인은 《신을 거역한 사람들(Against the Gods)》에서 인류는 불확실한 미래를 단순히 받아들이는 것에서 벗어나, 위험을 관리하는 법을 배워 나갔기에 현재에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했다. 한발 물러나 객관적이고 냉철한 시각으로 시장을 보고 또 다른 위험을 관리하는 방법을 터득할 때가 아닌가 싶다. 책임경영의 시대를 슬기롭게 받아들일 지혜를 모아 위기를 기회로 바꿔야 한다.

더욱이 2020년 다보스 포럼에서는 주주와 기업 이익을 우선시해 온 기존 자본주의에서 탈피해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모든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충족할 수 있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ESG 경영성과 달성과 세계적인 기업으로의 발돋움을 위해서는 이해관계자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여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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