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토르 피아졸라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있다. 반도네온. 흥겹지만 쓸쓸한 음색이 돋보이는 악기다. 반도네오니스트 고상지(사진)는 “깊은 서정성이 담겨 있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악기”라며 “정제되지 않고 투박하면서 날카로운 음색이 내겐 가장 큰 매력이었다”고 했다.
고상지는 국내에 몇 안 되는 반도네온 연주자다. 2005년 KAIST를 중퇴하고 반도네온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거장 반도네오니스트 고마쓰 료타를 스승으로 모셨고, 아르헨티나 탱고 오케스트라 학교에서 유학했다.
반도네온은 연주자들 사이에서 ‘악마의 악기’라고 불린다. 연주하기가 까다로워서다. 70여 개의 건반(키)을 조합해 140여 개 음을 낸다. 정확한 음표를 짚기도 어렵다. 앞선 음이 어떤 음표냐에 따라 똑같은 음이라도 건반을 달리 눌러야 한다.
연주 방식도 다양하다. 반도네온을 잡은 손의 각도나 주법에 따라 소리가 달라진다. 같은 곡이라도 매번 다른 연주를 가능하게 한다. 악보를 중심에 놓고 연습하는 클래식과 달리 탱고 연주자들이 편곡부터 하는 이유다. 고상지는 “다른 악기 연주에 맞춰 톤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며 “반도네온과 어떤 악단이 합주하는지에 따라 음악이 달라지는 점도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반도네온 연주에서 돋보이는 점으로 ‘그루브’와 ‘스윙’을 꼽았다. 연주자는 일정한 박자에 맞춰 반도네온에 공기를 불어넣고 뺀다. 질서 있게 리듬을 타며 그루브를 들려주기 위해서다. 동시에 즉흥성을 발휘해 관객들의 흥을 돋워낸다. 반도네온을 받치고 있는 다리를 떨어 떨림음을 내거나, 타악기처럼 본체를 두드리는 식이다.
고상지는 “이런 특성 덕분에 반도네온 연주를 듣다보면 감정이 극한으로 치닫는다”며 “피아졸라는 작곡가인 동시에 명연주자였다. 그만큼 아우라를 갖춘 연주자도 드물다”고 말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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