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영열차를 탄 신병들이 제일 먼저 도착하는 곳 논산훈련소. 논산은 군사도시 같은 느낌으로 오랫동안 사람들의 뇌리에 자리 잡았습니다. 논산이 의외로 볼거리가 많고 역사적으로 의미 깊은 유적지가 널려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국내 최장인 탑정호 출렁다리부터 마치 흑백필름처럼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논산 강경읍까지 한국의 이색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다면 이번주 논산으로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요?
사실 출렁다리 길이를 순위로 따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탑정호 출렁다리는 미적인 감각으로 순위를 정한다 해도 수위권에 들 것이 확실할 만큼 화사하고 그림처럼 아름답다. 출렁다리는 현수교 양식으로 기둥에 걸린 주 케이블에서 내려온 행어(hanger·가는 케이블)가 받치고 있다. 상판 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게 특이하다. 교량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구멍을 뚫었다고 한다. 수면에서 상판 바닥 구멍까지 높이는 10m로,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의 공포감이 극대화하도록 설계됐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은 발을 떼기 어려울 정도다.
낮에 탑정호 출렁다리를 건너면 다소 심심할 수 있겠지만 밤이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출렁다리를 배경으로 멀티미디어 분수쇼를 상영한다. 출렁다리 주탑과 주탑을 연결한 케이블에 LED 조명등 2만 개를 수직으로 촘촘하게 설치했다.
탑정호는 1944년에 조성된 유서 깊은 저수지다. 넓이가 662만㎡로 웬만한 신도시 규모다. 탑정이라는 이름은 호수 주변 작은 절의 탑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탑정호 주변에는 잘 다듬어진 수변 생태공원이 조성돼 있다. 힐링수변데크산책로라고 이름 붙여진 호수길은 3㎞나 된다. 편도 1시간30분이 넘는 길이다. 호숫가에는 물오리 떼가 한가롭게 노닐고 물속에 반쯤 몸을 담근 나무가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역사문화관에서 약 2㎞ 떨어진 둑길에는 미내다리가 있다. 뜬금없는 느낌이 들지만, 미내다리는 원래 충남과 전북을 이어주던 길이었다. 외견은 단단하고 위엄과 기품이 넘친다. 무지개 모양의 돌다리는 일대 세도가들이 돈을 모아서 만들었다고 한다. 걸어서 1분이면 건너갈 정도의 작은 다리지만 당시에는 영남·호남·충청을 통틀어 제일의 대교였다고 한다.
고려시대의 논산을 편린처럼 엿볼 수 있는 곳은 관촉사다. 고려 광종 때 혜명이 창건한 관촉사는 한반도에서 가장 큰 부처님이 계신 곳이다. 높이 18.12m, 둘레 9.9m의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흔히 은진미륵으로 불린다. 거대한 얼굴과 옥수수 모양처럼 위로 솟은 뾰족한 머리를 하고 있어 ‘못난이 불상’으로도 불렸지만, 2018년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됐다.
백제시대 비극의 드라마가 펼쳐진 곳도 논산이다. 계백의 결사대가 김유신의 5만 신라 대군과 결사 항전했던 황산벌이 탑정호 수변생태공원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다. 가족을 베고 쓰러져가는 조국과 함께 죽음을 택한 장수의 안타까운 절규가 들리는 것 같다. 참담한 비극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황산벌에는 패전의 역사를 담은 백제군사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한 번도 역사의 중심에 서지 못했지만 시기마다 깊고 선명한 흔적을 남겨놓은 곳. 어머니의 주름 같은 애환이 남아있는 곳. 논산은 바로 그런 곳이다.
논산= 글·사진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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