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전고투 끝에 김 의장은 ‘캄시(Calm Sea)’라는 스타트업을 인수하게 된다. 2014년 4월의 일이다. 당시 캄시는 인터넷 사용자에 관한 데이터를 분석해 인공지능(AI)이 쇼핑 추천을 해주는 업체로 주목받고 있었다. 쿠팡이 2014년 ‘로켓배송’을 선보인 것은 이렇게 실리콘밸리의 데이터 전문가들을 둥지로 끌어들였기에 가능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쿠팡을 잘 아는 사람들은 쿠팡의 ‘진짜 창업’을 2014년으로 본다. 캄시를 인수한 해다. 김범석 창업자는 캄시 인수를 계기로 쿠팡의 비전을 ‘빅데이터 물류’에 기반한 e커머스(전자상거래) 회사로 바꿨다. 캄시 CEO였던 제임스 다이는 쿠팡의 기술을 총괄하는 최고기술책임자(CTO)에 선임됐다. 그때부터 아마존 모델을 구현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해에 쿠팡은 총 4억달러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쿠팡의 성장사(史)는 그야말로 ‘블록버스터’ 급이다. 자본금 30억원으로 출발해 불과 10여년 만에 시가총액 72조원의 회사로 미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데뷔’했다. 단순 계산으로 2만4000배에 달하는 성장률이다.
비결은 무엇일까.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장은 “국내 기업 중 쿠팡처럼 체계적으로 데이터를 축적하고 활용하는 기업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쿠팡엔 삼성, LG전자 출신은 물론 아마존, 알리바바, 우버 등 글로벌 IT 기업 출신 인재가 수천 명”이라며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가 그랬듯이 인공지능(AI)과 데이터에 기반해 거대한 플랫폼을 구축한 뒤 그 위에 무엇이든 얹을 수 있는 기업을 만들었다는 점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광활한 땅 위에 물류센터를 짓는 ‘아마존 웨이’를 그대로 따라하기엔 난관이 많았다. 한 물류업계 전문가는 “아마존과 중국 징둥닷컴의 자동화 물류센터는 규모가 거의 10만 평에 달한다”며 “쿠팡은 한국처럼 인구 밀집도가 높은 국가에서 물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어떻게 구축해야 할지를 처음 보여준 기업”이라고 진단했다.
‘5조원의 실탄’을 얻은 김 의장이 향후 어떤 행보를 보일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쿠팡의 경쟁자들은 김 의장이 특유의 ‘판 뒤집기’ 전략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김 의장은 ‘소비자가 우리보다 늘 똑똑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런 원칙 아래 기존 공급자 우위의 서비스와 제품 공급 관행을 모두 뒤집었다. 물류 공식을 기존 ‘허브’ 식에서 ‘실핏줄’ 개념으로 바꾼 게 대표적이다. 중앙의 대형 물류센터에 모든 물건을 집하한 뒤 전국으로 보내던 관행을 전국 모든 가구 근처에 물류센터를 두는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김 의장은 평소 상장 이후 쿠팡의 미래에 대해 지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제 메이저리그 1회 초 첫 타석에 섰을 뿐이다.” ‘코리안 빅리거’로 실력을 인정받아 더 큰 무대에서 뛰게 됐다는 의미다. 쿠팡의 꿈이 한국을 넘어 세계로 확장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더 큰 무대로 올라서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쿠팡의 진격’엔 난관이 여전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아마존의 초기와 달리 쿠팡 곁엔 비슷한 덩치의 경쟁자가 수두룩하다. 아마존은 온라인 쇼핑이란 개념이 거의 없던 1994년 창업했다. 베이조스는 성장 과정 중 경쟁사라고 여겨지는 업체를 인수하곤 했는데 대표적인 곳이 온라인 유아용품 쇼핑몰 다이퍼스닷컴(2010년 인수)이다.
이에 비해 국내에선 11일 시가총액 기준으로도 네이버와 카카오가 각각 61조원, 42조원 규모다. 이들 두 기업은 정보기술(IT)에 기반해 플랫폼을 구축한 뒤 e커머스산업에 뛰어들었다는 점에서 쿠팡과 DNA가 비슷하다.
온라인 쇼핑만 놓고 봐도 경쟁자가 즐비하다. G마켓, 옥션 등을 운영하는 이베이코리아의 지난해 거래액은 20조원으로 쿠팡(22조원)과 거의 차이가 없다. e커머스업계 관계자는 “국내 소비자들은 최소 4~5개의 온·오프라인 채널을 통해 물건을 구매한다”며 “미국인들이 아마존 없이는 못 살아갈 정도로 ‘록인(lock-in)’되는 현상이 한국에서도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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