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 part.4] 보로노이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기술수출 쾌거, 인공지능으로 선택성 강한 후보물질 확보해 가능했다”

입력 2021-03-19 09:35   수정 2021-07-11 10:24

<p> ≪이 기사는 03월 19일(09:35) 바이오.제약,헬스케어 전문매체 ‘한경바이오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보로노이는 지난해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후보물질인 ‘VRN07’을 미국 오릭파마슈티컬스에 기술수출했다. 7200억 원 규모다. 김대권 보로노이 대표는 글로벌 빅딜을 성사시킨 비결로 ‘타깃 단백질에 대한 강한 선택성’을 꼽았다. 신약 개발에 인공지능을 도입해 가능한 일이었다.



보로노이가 지난해 11월 미국 오릭파마슈티컬스에 기술수출한 비소 세포폐암 파이프라인 ‘VRN07’은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EGFR) 돌연변이를 표적으로 한다.

비소세포폐암을 일으키는 EGFR 돌연변이는 유전물질인 mRNA의 엑손* 18~21번 자리에서 발생한다. EGFR 돌연변이 중 90%는 19번(Del19)과 21번(L858R)에서 변이가 일어난다. VRN07의 타깃은 ‘엑손 20 삽입 돌연변이’다. EGFR 돌연변이 중 3~4% 정도를 차지하고 있지만 치료제가 부재한 상황이다.

엑손 19번, 21번 돌연변이는 이미 개발된 1~2세대 치료제와 3세대 치료제인 ‘타그리소’로 어느 정도 치료가 가능하다. 하지만 엑손 20번 돌연변이는 타그리소의 반응성마저 낮아 환자의 생존기간을 늘리기가 어렵다. VRN07이 타그리소의 미충족 수요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높은 ‘선택성’과 ‘뇌투과율’이 주요 차별점

현재 엑손 20 돌연변이를 타깃으로 개발 중인 치료제는 얀센의 아미반타맙, 다케다의 모보서티닙, 한미약품의 포지오티닙이 있다. 아미반타맙과 모보서티닙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혁신적 치료제(breakthrough therapy)’로 지정해 신속승인이 진행될 예정이다.

상대적으로 후발주자인 VRN07이 내세우는 차별점은 두 가지다. 높은 ‘선택성’과 ‘뇌투과율’이다.
보로노이는 설립 초기부터 신약 개발에 인공 지능을 도입해 타깃 단백질에만 붙는 선택성 높은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해왔다. 김 대표는 “보로노이는 단백질 키나아제(인산화효소) 저해제를 집중적으로 발굴하고 개발하는 회사”라며 “키나아제는 선택성이 매우 중요한 단백질이라 처음부터 인공지능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단백질 키나아제는 특정 단백질을 인산화시키는 효소로, 다양한 세포 신호 전달 경로에 관여한다. 우리 몸에는 518가지의 키나아제가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EGFR을 포함해 주요 비소세포폐암의 원인인 ALK, RET도 키나아제의 일종이다.

문제는 500여 가지의 키나아제가 구조적으로 매우 유사하다는 점이다. 표적하는 키나아제에만 작용하는 저해제를 개발하기가 쉽지 않다. 자칫 정상 키나제의 활성을 막아버리면 조직의 재생이나 면역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인공지능 도입해 성공 가능성 높은 후보물질 발굴

보로노이는 다른 키나아제에는 결합하지 않으면서 표적 키나아제에만 강하게 붙는 화합물을 찾기 위해 인공지능 시스템 ‘카이허브(kiHUB)’를 도입했다. 카이허브는 카이허브 맵, 제네레이터, 프레딕터 등 세 가지 인공지능으로 구성된다.

카이허브 맵은 타깃 키나아제에 선택적으로 결합하는 화합물의 골격을 찾아 최적화하는 인공지능이다. 여기에는 468개의 키나아제에 대한 4000여 가지 화합물의 결합력 정보가 활용된다. 김 대표는 “보로노이의 핵심 데이터베이스로, 약 1년간 실제 단백질과 화합물을 제작해 실험한 순도 높은 데이터”라고 했다.

이렇게 선별된 화합물은 카이허브 제네레이터에서 다시 한번 타깃 단백질과의 결합력을 평가받는다. 여러 논문과 공개 데이터를 학습한 카이허브 제네레이터는 타깃 단백질과 결합력을 높일 수 있도록 화합물에 약간씩의 변형을 일으킨다. 하나의 화합물로부터 100만 개 이상의 골격 화합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카이허브 프레딕터는 임상시험 전 최종적으로 선택된 골격 화합물의 효능을 미리 예측하는 인공지능이다. 타깃 키나아제와의 결합력, 혈뇌장벽(BBB)의 투과도 등을 예측한다. 이 결과를 토대로 골격 화합물들의 순위를 매긴다.

김 대표는 “보통 이 단계까지 4~6년이 소요되지만 우리는 1년 6개월 만에 후보물질 발굴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실제 비소세포폐암 파이프라인인 ‘VRN07’은 약 6개월 만에 최종 물질을 발굴했다.

타그리소의 2배에 달하는 뇌투과율 확보

VRN07이 BBB 투과율이 높은 것도 인공지능 덕분이다. 카이허브 프레딕터를 통해 BBB 통과율이 높은 물질을 우선적으로 선별했다. 엑손 20 번 돌연변이 환자 중 30~40%가 뇌로 암이 전이돼서다. 김 대표는 “약물이 작을수록 높은 선택성을 갖기가 어렵기 때문에, 선택성만을 고려하면 필연적으로 약물의 크기가 커진다”며 “우리는 선택성과 뇌투과율을 고려해 최적의 후보물질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항암제 중 가장 높은 BBB 투과율을 자랑하는 것은 타그리소다. 김 대표는 “쥐에서 실험한 결과 VRN07의 BBB 투과율은 타그리소의 2배에 달한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체내 혈액을 기준으로 VRN07이 뇌 조직에서 어느 정도 발견되는지를 확인해 뇌투과율을 측정한다. 쥐 동물모델에서는 체내 혈액과 뇌 조직을 동시에 채취해 약물 농도를 비교한다. 그 결과 비소세포폐암이 뇌로 전이된 실험 쥐의 뇌에서 혈액 대비 77%에 해당하는 VRN07이 발견됐다. 효능 역시 다케다의 모보서티닙에 비해 25배가량 높은 것을 확인했다.

현재 VRN07은 전임상을 마치고, 비임상 독성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기술이전을 한 오릭파마슈티컬스와 함께 올해 하반기 임상 진입을 목표로 개발 중에 있다. 김 대표는 “VRN07은 20번 돌연변이를 가진 환자들의 생명을 연장시킬 혁신신약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엑손 단백질 정보를 가진 초기 mRNA는 ‘엑손’과 ‘인트론’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실제 정보를 포함하는 엑손만을 잘라내 이어 붙이면 비로소 단백질 생성이 가능한 ‘성숙한 mRNA’가 된다. 이때 엑손 일부가 사라지거나 잘라내야 할 부분이 그대로 남아있는 유전자 변이가 발생할 수 있다.
<hr >*애널 분석

"임상시험 결과에 따라 시장성 확보 가능해" <i>by 오규희 어니스트벤처스 이사</i>
VRN07의 경우 EGFR을 직접 타깃하는 약물로, 엑손 20 삽입 돌연변이 환자를 대상으로 한다. 경쟁약물로는 한미약품의 포지오티닙, 일본 다케다제약의 TAK-788이 있다. 미국 나스닥 상장사인 오릭파마슈티컬에 7200억 원 규모의 수출 계약을 했다. 이후 오릭의 주가가 소폭 상승하는 등 시장의 반응도 좋은 것으로 파악된다.
데이터가 확실한 데 비해 상대적으로 시장에 덜 알려진 파이프라인으로, 향후 임상시험 결과에 따라 시장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지원 기자 jwchoi@hankyung.com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3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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