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룸프레스 출판사의 책 표지는 독특하다. 제목이 적히지 않은 책이 많다. 소설가 배수아의 중편소설 《멀리 있다 우루는 늦을 것이다》의 표지엔 검은색과 흰색, 초록색과 빨간색으로 구성된 그림만 있다. 안무가 이양희의 《더스크》 표지는 흰 바탕에 세로줄만 그어져 있다. 표지를 넘겨야만 책의 정체를 알 수 있다.
“책마다 세상에 하나뿐인 색의 영혼을 입힌다고 생각합니다. 책의 개성은 다르지만 독자에게 ‘이 책은 워크룸프레스에서 나왔구나’라는 느낌을 주죠.”
박활성 워크룸프레스 공동대표 겸 편집장의 말이다. 서울 창성동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실험적인 표지 디자인으로 독자가 책을 한 번 더 집어들 수 있는 동기를 제공한다”며 “좋은 책에 어울릴 아름답고도 파격적인 패션을 창조한다는 마음으로 디자인을 구성한다”고 설명했다.
워크룸프레스는 2006년 12월 박 대표와 그래픽디자이너인 김형진·이경수 공동대표가 함께 창업했다. 박 대표와 김 대표는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동기다. 이 대표는 단국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3명이 500만원씩 모아 사무실을 꾸렸다. 초기엔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도록 디자인을 만들었고, 이후엔 다른 출판사의 책 표지 디자인을 제작했다.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워크룸프레스만의 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출판 분야는 다양하다. 홈페이지엔 이렇게 쓰여 있다. “동시대 시각문화와 타이포그래피, 인문학에 관심을 둡니다. 디자인을 기반으로 다른 영역을 기웃거리며 문학을 동경하는 한편 실용을 추구합니다.” 박 대표는 “실용서스럽지 않은 실용서, 인문서 같지 않은 인문서를 콘셉트로 한다”며 “사실 어떤 책이든 특정 분야로 무 자르듯이 나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워크룸프레스의 이름을 알린 계기는 ‘워크룸 문학총서 제안들’이었다.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문학 작품을 소개한다는 취지였다. 2014년 프란츠 카프카의 《꿈》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7권을 냈다.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의 작가 사뮈엘 베케트, 프랑스 소설가 앙투안 볼로딘 등 일반 독자에겐 덜 알려진 문인들의 선집도 만들었다. 박 대표는 “‘제안들’ 시리즈를 내면서 디자인과 미술 중심이었던 워크룸프레스의 영역이 확실히 넓어졌다”며 “출판계와 독자에게 눈도장을 찍게 해 준 고마운 총서”라고 말했다.
다소 대중성이 낮은 전문 분야 도서도 펴냈다. 타이포그래피 관련서인 《능동적 도서》(크리스토퍼 버크, 박활성 옮김), 국내 구전설화 속 괴물을 소개한 《한국괴물백과》(곽재식), 서울의 철도 현황과 전망을 다룬 《거대도시 서울 철도》(전현우) 등이다.
워크룸프레스에선 현재 공동대표 3명을 포함해 편집자와 디자이너 등 총 6명이 일한다. 박 대표는 편집, 김 대표는 책 표지 디자인을 각각 총괄한다. 문학, 패션, 실용서 등을 담당하는 분야별 전문 편집자도 있다. 공동대표와 직원 모두 책 기획과 편집 권한을 동등하게 가진다. “특별히 하자가 없는 한 기획자가 저자와의 연락, 저작권 논의, 출간, 보도자료 제작 등을 혼자 합니다. 저는 각 원고 편집만 맡아요. 처음엔 이래도 되나 싶었는데 결과가 꽤 괜찮더라고요.”
박 대표는 “앞으로도 독자에게 ‘갖고 싶은 책, 읽어보고 싶은 책’이란 인상을 심어주는 특별한 책 디자인을 지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자가 구사하는 언어가 다르듯, 책 디자이너도 저마다의 문체가 있어요. 이 둘이 얼마나 절묘하게 조합을 이루느냐가 관건입니다. 표지만 좋으면 공허하고, 내용만 좋으면 알려지지 않으니까요.”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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