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기업금융' 발목 잡는 근로시간 규제

입력 2021-03-14 18:39   수정 2021-03-15 00:06

전자상거래 기업 쿠팡의 뉴욕증시 상장이 연일 화제다. 국내에 사업기반을 둔 혁신기업이 해외에서 자금조달을 받아 더 큰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반가운 소식인데, 국제적 규모의 혁신기업 자금조달이 국내 자본시장에서 이뤄지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쿠팡의 상장을 주관한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투자은행의 담당자들은 국제적 시장상황 변화에 시시각각 대응하며 불철주야 상장업무를 진행한다. 글로벌 투자은행의 기업금융(IB) 업무 종사자는 주당 70시간에서 한창 바쁠 때는 주당 100시간 정도 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적용해도 주당 64시간 이상 일할 수 없는 국내 기업금융 업무의 제도적 실상과 크게 대비된다.

기업의 혁신과 성장에 필요한 상장, 인수합병, 기타 기업금융 업무는 근로의 양이 아니라 집약적 성과에 따라 성패가 좌우되는 특징이 있다. 세계 유수의 글로벌 투자은행은 우수한 인적 자원을 중요한 업무타이밍에 집중적으로 투입할 수 있는 역량을 기반으로 국제적으로 경쟁하고 있다. 투자은행 종사자들은 고액 성과보상체계하에서 많은 노동시간을 투입하며 성과를 달성하려는 동기부여가 높다는 점에서, 주요 선진국은 이들의 근로시간에 대해 경직된 법적 규제를 하기보다는 근로자와 회사 간 자율적 협약과 계약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근로시간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혁신기업의 고성장 즉, 스케일업이 혁신성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떠오르면서 기업금융업무를 담당하는 국내 금융투자업계의 역할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기업가치 1조원 이상인 비상장 혁신기업 즉, 유니콘기업은 투자은행의 기업금융서비스를 제공받으며 증권거래소에 상장되고 다른 유망기업을 인수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 해당 국가의 경제를 지탱하는 대기업으로 발돋움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미국 경제의 핵심기업인 FANG(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도 이런 과정을 거쳐 성장했다. 결국 기업금융업무의 경쟁력은 해당 국가 경제의 경쟁력과 직결되는 것이다.

현행 근로시간제가 기업금융업무에 경직적으로 적용될 때, 국내 금융투자회사들이 국제적 수준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혁신성장을 효율적으로 지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혁신기업을 발굴하고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국내 기업금융 담당자들이 변화하는 시장환경에 즉각적으로 대응하며 고난도의 업무를 전문적으로 수행할 충분한 근로시간이 확보돼야 한다. 우리나라와 혁신산업 부문에서 경쟁하는 주요국들의 투자은행은 경직된 근로시간제의 제약을 받지 않고 있다. 미국, 일본, 독일 등 혁신성장의 선진국들은 모두 기업금융 부문에 대한 근로시간 특례제도를 갖추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의 한국 업무 담당 직원이 한국이 아니라 홍콩에서 근무하며 국내 근로시간제의 엄격한 규제를 회피하는 현실은 국내 기업금융업무 근로시간 특례제도의 미비에 따른 문제점을 잘 나타낸다.

기업금융업무는 특성상 업무 수행 방법을 종사자의 재량에 위임할 필요가 크기 때문에, 기업금융업무를 국내 재량근로시간제의 대상 업무로 조속히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이런 재량근로시간제를 통해 국내 금융투자업계는 혁신기업의 성장에 필요한 투자은행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며, 국내 금융중심지가 세계화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를 수 있다.

물론 금융투자업계 근로자의 권익이 희생되는 상황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기업금융업무 근로자대표와 사용자 간 재량근로시간제 서면합의와 관련해 공정한 협약이 이뤄지는지 관리·감독해야 할 것이다. 해외 선진국은 업종 특성을 반영한 근로시간제 규제완화에 수반되는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경직된 사전규제보다 신속하고 효과적인 사후규제 활용을 선호한다. 따라서 근로시간 특례에 따른 각종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 재판 외 분쟁해결절차를 잘 활용해 기업금융업무 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등 제도운용의 묘를 살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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