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분쟁이 벌어진 금호석유화학 주주총회(26일)를 앞두고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 ISS가 '도전자' 박철완 금호석화 상무(박찬구 회장의 조카, 박정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아들) 대신 박찬구 현 회장 측의 손을 들어줬다. ISS는 국내외 연기금 및 기관투자가들이 주총 안건에 대한 의견을 묻는 자문사다. 특히 외국 기관투자가들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ISS는 금호석화의 이번 주총 표대결에 대해 "총주주수익률(TSR)이나 실적만 봐서는 이 회사가 주총에서 표대결을 벌여야 하는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며 "창업자 가족 일가 내 분쟁이라는 측면에서 최근 한국에서 일어난 유사한 표대결(한진칼을 언급한 것으로 추정)과 비슷한 점이 있다"고 언급했다. 또 "이번 표대결의 핵심 쟁점은 '자본의 적절한 배분(capital allocation)'"이라며 "한국 의결권 분쟁에서 자본 배분이 문제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ISS는 금호석화의 실적이 대체로 좋기 때문에 회사 경영진을 급격히 바꿔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어려우며, 지나치게 많은 자사주 보유 물량 등 자본 배분에 관한 우려가 있지만 경영진이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고 했다.
◆박찬구 회장 승기 잡았다
14일 ISS 및 금호석유화학에 따르면 ISS는 최근 발송한 권고안에서 금호석화 회사 측이 제안한 주요 안건에 모두 찬성을 권고했다. ISS는 △주당 보통주 4200원, 우선주 4250원 배당(배당성향(DPR) 19.9%) △백종훈 사내이사 선임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을 포함한 사외이사 선임 등 현 경영진 측 제안(management proposal)에 모두 찬성을 권고했다.
ISS는 보고서에서 “금호석유화학 측이 제안한 지배구조 개선안은 박 상무 측이 제시한 우려에 대한 대응 성격이기는 하지만, 이사회를 강화하고 그 기능과 시야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찬성 이유를 설명했다.
ISS는 또 재무제표와 이익 배당 안건에 대해서는 “지난 3년 동안 금호석유화학의 총주주수익률이 박 상무 측이 제시한 동종업계 회사들과 비슷하거나 높은 수준이었다”이라고 평가했다. 영업실적의 측면에서도 금호석화의 실적은 좋은 편이었다.
ISS는 이런 부분들을 고려하면 (회사에 대규모 변화가 필요하다는) 도전자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많지 않다는 점을 설명했다. 특히 영업실적에 관해서는 "박 상무 측도 금호석화의 실적이 동종업계 수준이거나 이를 능가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이 문제에 관해 특별히 더 깊은 지적을 내놓지 않았다"고 적었다.
◆박철완 상무 제안 "설득력 약해" 평가
ISS는 박 상무 측이 제안한 주당 1만1000원 배당 안건(배당률과 자신을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안건 등에는 모두 반대를 권고했다. 보고서는 "박 상무 측 제안은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현금의 절반 이상을 배당금으로 소진하는 것"이라며 “이 회사가 지나치게 많은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그러므로 배당금을 더 주어야 한다)는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박 상무의 사내이사 선임 및 기타 사외이사 선임 안건에 관해서도 “설득력이 충분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비주력 사업부문을 모아 IPO를 하겠다는 박 상무 측의 주장에 대해서는 "한국의 지주회사들에 대한 현저한 디스카운트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전체 비주력자산의 20~25%에 달하는 비주력 사업부 IPO 구상은 주주가치를 확대하기 위한 최적의 방안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다만 "비주력 자산 가운데 본업과 시너지가 적은 아시아나항공이나 대우건설 등 상장사 자산을 매각하는 것은 합리적(sensible)"이라고 평가했다.
◆박찬구 회장 '타협안' 먹혔다
박철완 상무가 올 초 '도전장'을 던진 후 박찬구 회장 측은 배당성향을 높이고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겠다고 하는 등 나름대로 주주들에게 구애의 메시지를 보냈다. 박 상무 측이 제안한 배당 대폭 확대 등의 메시지가 기관투자가나 소액주주들의 마음을 흔들 가능성을 우려한 것이다.
2019회계연도의 금호석화 배당금은 주당 1500원(보통주 기준)이었다. 배당성향은 13.9%에 그쳤다. 올해는 이 성향(순이익 대비 배당금 규모)을 19.9%로 끌어올렸다. 작년에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린 데다 배당성향까지 높아지면서 주당 배당금이 4200원으로 전년 대비 2.8배가 됐다.
물론 박 상무 측이 제안한 주당 11000원에 비하면 38%에 불과하다. 그러나 ISS가 지적했듯, 과도한 배당 확대로 인해 회사가 재무적으로 불안정해지는 것은 주주들에게도 장기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보고서에 따르면 금호석화 경영진은 "현재 15~20% 수준인 배당 성향(DPR)을 동종업계 5년 평균치를 참고해 20~25%로 높이겠다고 밝혔다. 또 그간 배당성향이 낮았던 이유를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독립하는 과정에서 재무상황을 안정시키는 데 우선순위를 두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ISS, 자사주 대량 보유 등은 비판적
ISS 보고서는 대체로 박 상무 측의 지적을 받아들이지 않고 경영진의 해명 쪽에 무게를 뒀다. 비판적인 톤을 유지한 것은 금호리조트 인수나 자사주 대량 보유 정도의 사안에 그쳤다. ISS는 특히 금호석화가 18.4%에 이르는 대량의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는 점에 대해 "그 어떤 기준으로 봐도 엄청난 규모"라고 평가했다.
또 이를 어떻게 할지 아무런 계획을 밝히지도, 소각을 하지도 않고 계속 보유하는 것에 대하여 "경영진이 이를 단순히 향후 외부세력의 공격(intervention)에 대비해 보호 수단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라고 꼬집었다. ISS는 "경영진이 (공개적으로는 처음으로) 자사주에 관하여 이를 사용하거나 소각하는 옵션을 고려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언급하였으나, 언제 그렇게 하겠다는 분명한 시기는 밝히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ISS의 이번 보고서 톤은 지난해 한진칼 주총에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KCGI 등 3자연합 간 표대결이 벌어졌을 당시와 대조적이다. 작년 3월15일 ISS가 내놓은 보고서는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에 대하여 '찬성' 권고했으며 대부분 언론도 이를 중심으로 다뤘다. 가장 결과에 영향을 많이 미치는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보고서를 자세히 보면 조 회장 측이 '완전히 이겼다'고만은 할 수 없는 대목들이 적지 않았다.
예컨대 ISS는 3자연합이 제안한 김신배 전 SK그룹 부회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안에 대해서도 '찬성'을 권고했다. 또 사외이사 후보 중에서도 회사 측 제안 5명을 전부 찬성하지 않고 3명을 골라 찬성 권고하고 나머지 2명은 반대 권고했다. 당시 반대 사유는 해당 후보에 결격사유 등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정 이사회 규모를 넘어선다는 것이었지만, 어쨌든 회사 측 제안을 '패키지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나아가 ISS는 정관 변경 문제에 대해서는 회사 측 제안보다 3자 연합 측 제안을 훨씬 더 많이 수용했다. 회사 측이 제안한 정관 변경안 3가지는 모두 반대 권고하고, 3자 연합이 제안한 전자 투표제 도입, 이사의 의무에 대한 명확한 규정 등은 모두 찬성 권고했다.
분명한 것은 ISS가 표대결 상황에서 자신이 선호하는 진영을 택해 한쪽 의견을 전부 찬성하고 다른 쪽 의견을 전부 반대하는 식으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안건 하나하나에 대해 찬성 및 반대 권고 여부를 각각 판단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혼합' 의견이 나오는 경우도 흔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금호석화 자문 내용은 한진칼의 사례와 비교해 '일방적인 한쪽의 승리'에 더 가깝다고 평가할 수 있다.
◆금호석화 "주총서 유리할 듯" 기대
금호석유화학 관계자는 “기관투자가와 외국인 투자자 의결권 행사의 자문을 담당하는 ISS가 회사 측 안을 지지함에 따라 이번 주총 표 대결에서 안건 통과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며 “ISS 외에도 국내외 주요 의결권 자문사를 통해 회사 측 안의 합리성과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금호석유화학은 지난 12일 ‘의결권 대리 행사 권유에 대한 의견 표명서’ 공시를 통해 박 상무의 고배당안에 대해 비판했다. 회사 측은 “박 상무 측 주주제안에 따른 배당금은 총 3072억원으로 회사의 2017~2019년 배당총액의 세 배에 달한다”며 “막연한 전망을 제시하면서 재원은 모두 소진하는, 모순된 제안을 하는 것은 회사의 중장기적 발전에 중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한편 금호석화 공시에 따르면 박철완 상무의 장인인 허경수 코스모그룹 회장은 최근 금호석화 지분 1만4373주를 매입해 특수관계인으로 등록됐다. 지분율은 0.04%로 아직 미미하지만, 박 상무 측이 이번 주총 이후를 대비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허 회장은 해당 주식을 주당 평균 20만8505원에 총 29억9684만원을 들여 샀다. 허 회장을 비롯한 박 상무 측 지인들이 추가 매입을 지속할 경우 이번 주총 이후에 임시주총 개최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상은/최만수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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