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넷플릭스 피로증?

입력 2021-03-15 17:51   수정 2021-03-16 00:15

코로나19가 창궐하던 지난해 상반기, “넷플릭스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며 침이 마르게 칭찬했던 50대 후반 지인이 있다. 넷플릭스를 ‘집콕’의 돌파구로 삼았던 것이다. 오랜만에 그를 만나 “요즘도 빠져 있냐”고 물었더니 뜻밖에도 “이제 끊을 참”이라고 했다. “한 편 보면 밤새도록 이어 볼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특유의 ‘공식’이 처음엔 신선했는데, 갈수록 뻔해지더라고. TV 볼 시간을 아껴 책을 읽는 게 나을 거 같아.”

넷플릭스의 전 세계 가입자 수가 지난해 말 2억300만 명을 돌파한 마당에 일부 사례를 대세인 것처럼 일반화할 순 없다. 하지만 이처럼 일종의 ‘넷플릭스 피로증’을 호소하는 가입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넷플릭스를 포함한 미국 내 전체 유료 스트리밍 서비스 이탈률(서비스 해지자 비율)이 작년 5월 9%에서 10월엔 34%로 치솟은 게 이를 입증한다.

가입자 수 증가속도도 확 꺾였다. 넷플릭스 신규 가입자는 지난해 1분기 1580만 명을 정점으로 2분기에 1010만 명, 3분기엔 220만 명으로 뚝 떨어졌다. 이 같은 감소세엔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도 영향을 줬다. 디즈니플러스는 ‘더 만달로리안’ ‘완다비전’ 등 쟁쟁한 오리지널 콘텐츠를 앞세워 2019년 11월 서비스 시작 후 16개월 만에 가입자 수 1억 명을 돌파할 정도로 고속성장세다. 넷플릭스가 1억 명을 돌파하는 데 걸린 기간(10년)을 대폭 앞당긴 것이다.

미국 바깥에서는 아리나(핀란드), 티빙·왓차·웨이브(한국) 등 각국 토종 온라인 동영상서비스(OTT)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 넷플릭스가 비밀번호 하나로 여러 명이 공유해 사용하는 ‘몰래 시청’ 단속에 나서자 가입자들이 “디즈니플러스나 아마존 프라임으로 옮기겠다”며 집단행동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다양한 대체재가 등장한 덕이다.

물론 190여 개국에서 조달한 콘텐츠를 한날 한시에 뿌리는 다양성과 동시성은 아직까지 다른 OTT가 넘보기 힘든 강점이다. 한국형 SF영화 ‘승리호’와 좀비 드라마 ‘킹덤’이 세계 영화·드라마팬들에게 관심을 끌고, 멕시코와 스페인 드라마 ‘검은 욕망’ ‘종이의 집’이 한국에서 인기를 끈 것도 넷플릭스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렇지만 이 ‘OTT 공룡’이 여러모로 기로에 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날이 갈수록 변화무쌍해지는 시청자들의 ‘입맛’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극장과 지상파 채널처럼 한순간에 쪼그라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기에 앞날이 더 주목된다.

송종현 논설위원 scre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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