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현의 논점과 관점] 기업이 홀로 커야 하는 나라

입력 2021-03-16 17:49   수정 2021-03-17 00:16

코로나19 창궐 전까지 글로벌 자본시장의 저명한 투자자들이 한국 주식에 투자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많지 않다. 영화 ‘빅쇼트’의 주인공 마이클 버리 사이언에셋매니지먼트 최고경영자(CEO)가 2019년 미국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뜬금없이 “한국의 저평가 중소형주를 주목한다”고 밝히고, 코스닥시장 상장사 오텍과 이지웰페어에 투자한 것이 떠오르기는 한다.

하지만 이는 월가에서도 이단아인 버리의 ‘튀는’ 투자였을 뿐 대세는 아니었다.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이 2018년 CNBC와의 인터뷰에서 “오마하 집에 삼성전자 TV를 걸어뒀다”며 삼성전자 칭찬을 한 적이 있지만, “투자는 안 했다”고 못박았다.
'한국'에 꽂힌 해외 투자자들
202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에 대한 해외 투자자의 인식은 ‘한국=반도체’에 머물렀다. “외국인이 한국 비중을 늘렸다고 하면 대개 반도체주를 샀거나, 코스피 추종 인덱스펀드에 투자한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었다. 세계 최고·최대인 미국을 놔두고 굳이 밖에 투자할 필요가 없는 상황, 미미한 한국 증시 규모(세계 증시의 1.2%)를 감안하면 이해가 간다.

그랬던 분위기가 코로나 사태를 기점으로 확 바뀌었다. 지난해 9월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기업공개에 싱가포르투자청(GIC)과 블랙록이 “일정 기간 주식을 팔지 않겠다”는 약속(의무보유 확약)까지 하고 참여한 건 놀라운 일이었다.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갑 중의 갑’으로 통하는 이들이 이렇게까지 몸이 단 건 이례적이다.

쿠팡이 뉴욕증시에 상장하면서 “아마존보다 낫다”(배런스)는 평가를 받고, 덩달아 마켓컬리의 뉴욕행(行) 가능성이 월스트리트저널에 비중 있게 보도된 것도 마찬가지다. 월가의 ‘스타’ 헤지펀드 매니저인 스탠리 드러큰밀러 듀케인캐피털 CEO와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 CEO가 쿠팡의 투자자임이 뒤늦게 알려진 건 덤이다.

대체 1년여 만에 분위기가 왜 이렇게 바뀐 걸까. “서구에 비해 양호한 방역”(드러큰밀러 CEO)은 한국에 투자할 이유로 꾸준히 거론된다. 미래 성장산업 중심으로 황금분할된 산업 지형도 매력 포인트다. 증시 시총 상위권이 반도체(삼성전자·SK하이닉스) 배터리(LG화학) 미래차(현대차) 바이오(삼성바이오로직스·셀트리온) 플랫폼(네이버·카카오) 등 성장 업종으로 다양하게 구성된 증시는 미국을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기업 '발목'만 안 잡았으면
궁금한 건 ‘한국 기업들이 유례를 찾기 힘든 규제 태클을 뛰어넘어 스스로 이런 변화를 이끌어낸 것을 정부와 정치권도 알고 있을까’ 하는 점이다. “한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만들 것”이라고 했던 대통령의 공언이 무색하게 기업들에 돌아온 건 기업규제 3법·노동조합법 같은 ‘세계 최강’ 규제였다.

쿠팡의 뉴욕행 이유가 된 차등의결권이 논란이 되자 “(본사가 미국에 있는) 기업이 미국에 간 것일 뿐”이라고 깎아내리는 판국이다. 상장을 계기로 고용을 5만 명 더 늘릴 것이라는 기업에 대한 인식이 이 정도니 정부 속내가 무엇인지 충분히 짐작된다.

세계는 반도체 등 미래 산업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총성 없는 전쟁’이 한창이다. 일본·대만 같은 경쟁국들은 여기서 승리하기 위해 정부가 필사의 외교전을 펼치고 있다. 반면 한국은 당·정이 추가 규제법안 입법을 벼르면서 어떻게든 기업을 깎아내리는 ‘자해 행위’가 끊이지 않는다. 오죽하면 기업인들이 “도움은 필요 없으니 발목만 안 잡았으면 좋겠다”는 나라다. “삼성전자가 미국으로 가면 시총이 1000조원으로 뛸 것”이라는 얘기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scre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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