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김도형의 금융法](29) 대우조선해양 사외이사, 2천억대 면책 판결

입력 2021-03-18 12:28   수정 2021-03-18 12:30



역대 최대 규모의 분식회계사건이었던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건은 처음 소송이 제기된 2015년 9월 30일로부터 약 5년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 수십 건의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2월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와 관련된 첫 1심 판결이 선고됐는데도 아직까지 1심이 진행 중인 사건도 많다.

지난달 4일에는 이번 사건의 주요 변곡점이 된 판결이 나왔다. 이날은 국민연금 및 공무원연금 등 적게는 수백억 원에서 많게는 1000억 원 이상의 손해배상을 구한 연기금 관련 판결이 선고됐고, 대우조선해양 사외이사에 대한 책임 여부가 처음으로 가려졌다.

원고들이 많은 만큼, 피해보상을 구하는 범위나 대상도 다양했다. 주된 책임자로 지목된 대우조선해양이나 안진회계법인은 모든 소송에서 피고로 특정됐으나, 사외이사의 경우에는 이들을 피고로 포함시킨 경우도 있고, 포함시키지 않는 케이스도 있었다.

필자가 소속된 법인에서도 대우조선해양 사외이사를 대리해 소송을 진행했는데, 전체 소송규모 약 3200억 원 중 사외이사가 피고로 특정된 사건은 약 2200억 원 가량이다. 지난달 4일 2200억 원 중 약 1850억 원 규모의 판결 선고가 있었다. 사외이사에 대해서는 전부 면책 판결이 내려졌다.

담당변호사들은 자본시장법 제162조 제1항을 기반으로 면책을 받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당시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의 활동 내역이 담긴 이사회·감사위원회 의사록 뿐만 아니라, 각종 언론보도 및 증권사 리포트, 금융감독원 보도자료, 관련 판결 등 수 많은 자료들을 정리·분석해 재판부에 제시했다.

이런 자료들을 바탕으로 사외이사가 상당한 주의를 다했는데도 불구하고, 당시 제반사정에 비춰 사외이사들이 분식회계를 의심할만한 정황은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는 모두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대우조선해양의 명백한 분식회계 사실에도 불구하고 대우조선해양 사외이사들은 손해배상책임을 지지 않게 됐다.

사외이사 대부분이 교수 등의 전문가 그룹으로 기관이 아닌 개인이었다. 이들에게 소송가액 2200억 원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액수의 금액이다. 이번 1심 판결을 받기까지 약 5년에 걸친 기간 이들의 심적 고통은 적지 않았다. 다행스러운 것은 원고들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위 판결이 확정됐다는 점이다. 나머지 약 350억 원 가량의 소송에서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외이사들의 면책을 인정하는 결론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위 소송을 진행하면서 감사위원회가 외부 전문가를 활용해 조사하도록 하고 보고받는 절차를 취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 상법은 감사 또는 감사위원회에게 이사의 직무 집행을 감사할 의무를 부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이사에게 영업에 관한 보고를 요구하거나 회사의 업무와 재산상태를 조사할 수 있는 권한 및 회사의 비용으로 전문가의 조력을 받을 수 있는 권한도 부여하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도 여러 자료를 통해 상당한 주의의무를 다했음을 인정받기는 했지만, 만일 외부 전문가를 활용한 조사보고서가 존재했더라면 훨씬 쉽게 대응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그만큼 사외이사들이 판결이 내려지기까지 마음 졸이는 일은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최근 들어 ESG 경영과 준법경영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감사위원회의 요청으로' 회사의 주요 소송이나 사건 등에 대한 법률적 분석 업무를 의뢰받는 일이 증가하고 있다. 대표이사·사내이사 또는 사내 법무팀에서 제공하는 보고자료에 의존해 판단하기보다는 감사위원회 독자적으로 주요 사건들에 대한 법률검토를 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부터 시행되는 감사위원 분리선출 제도 도입으로 감사위원 임기가 만료된 회사들을 중심으로 연초부터 이와 관련한 자문 요청도 끊이지 않고 있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제도로 소수주주가 뽑은 감사위원이 감사위원회 구성원 중 1인으로 포함되는 경우에는 이런 감시활동이 보다 엄격해 질 것으로 예상된다.

감사위원회의 활동에 대한 대응이나 보조를 귀찮은 일에 불과하다거나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하는 업무로 여기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감사위원회와 이사회가 견제와 균형을 이뤄가는 것이 ESG 경영의 핵심 이념인만큼, 이는 앞으로 우리 기업들이 추구해 나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된다. 사외이사들도 개인의 자기 방어 목적은 물론이고 회사의 종국적인 발전을 위해 외부 전문가와의 소통과 협업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가끔씩 회사를 방문하면서 거수기 역할을 하는 대가로 수천만 원의 연봉을 받는 것이 사외이사라고 생각했다가는 큰 화를 입을 수 있어서다.

김도형 <법무법인(유한) 바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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