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 후 학대로 정인이를 숨지게 한 양부모에 대한 4차 공판이 17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렸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3부(부장판사 이상주) 심리로 이날 열린 양모 장모씨와 양부 안모씨의 재판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소속 부검의 A씨가 증인으로 나왔다.
A씨는 "2002년부터 국과수에서 일했고 지금까지 3800건 정도 부검했다"고 소개한 뒤 "지금까지 제가 봤던 아동학대 피해자 중 제일 심한 상처를 보았다. 다른 부검의 3명도 같이 봤는데 다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그간 경험했던 사체들보다 손상이 심했는지 묻자 "학대인지 아닌지 부검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며 학대로 사망한 것이 확실하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정인이의 얼굴 상처에 대해서는 "일반적 사고로 상처가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맞았을 때 자주 목격되는 손상"이라며 "머리 뒤에만 수십개 이상의 멍이 있었다"고 언급했다.
또 "갈비뼈 골절이 있으면 학대에 의한 손상으로 추정할 수 있다"며 "직접 때려서 생길 수도 있고, 아이의 몸통을 세게 잡고 흔들어도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A씨가 법정 내 스크린에 정인이 부검 당시 사진을 띄우고 설명을 시작하자 방청석에선 한숨과 탄식이 흘러나왔다. 일부 방청객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양부모 장씨와 안씨는 고개를 숙이고 한 차례도 화면을 쳐다보지 않았다.
사인인 췌장 절단과 장간막 출혈을 설명하면서는 사망 최소 닷새 전에 심각한 손상이 있었다는 소견을 밝혔다.
A씨는 "손상 이후 회복하며 단단하게 만드는 조직이 콜라겐 섬유인데, 그게 며칠 지나야 생긴다"며 "췌장이나 복강 내 손상부위에 (콜라겐 섬유가) 있어서 최소한 수일 이전에 심각한 손상이 있었을 걸로 생각한다"고 증언했다.
사망 이전에도 정인양에게 상당한 기간 동안 치명적인 학대 행위가 있었음을 짐작케 하는 증언이다.
이날 재판에는 부검의에 이어 법의학 전문가인 유성호 서울대 교수도 증언대에 나섰다. 그 역시 "사망 3~7일 전에 복부 내 췌장 손상 흔적이 발견됐다. 반복된 학대가 있었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유성호 교수는 "췌장은 복부 깊숙이 있어 파열되기 어렵다. 만약 (췌장과 가까운) 등쪽에서의 충격으로 췌장이 절단됐다면 먼저 척추가 부러졌을 것이다. (척추 뼈는 멀쩡함에도 앞쪽에서의 충격으로 췌장이 절단된 사례는) 무단횡단하다 여러 번 차에 치인 사람에게 저런 형태를 경험했다. 소아에게선 저런 상처를 본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체중 9~9.5Kg인 정인이가 바닥으로 추락하면서 의자 등에 부딪혀 췌장이 절단됐다는 양모 측 주장에 대해서는 불가능하다고 일축했다.
그는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해봐도 (아이를 떨어뜨려 췌장이 절단됐다는 주장은) 이해가 안 된다. 이런 형태는 개인적으로는 발로 밟았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본다)"고 부연했다.
주먹으로 때려서 비슷한 부상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주먹으로 때려 장간막이 파열되거나 췌장이 파열된 것을 보지 못했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UFC(이종격투기) 선수 정도가 때려야 그 같은 부상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찰 측도 "양모 장씨가 당시 유방 확대 수술로 상체 움직임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본인 스스로도 당시 운전이 힘들 정도였다고 진술했다"며 "주먹으로 때려 이와 같은 부상을 유발했을 가능성은 낮다"고 지적했다.
유성호 교수는 '이번 사건이 고의적 살인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재판부가 판단할 문제"라면서도 "정인이에게 너무 많은 상처가 있었다. 일반인은 장천공만 생겨도 데굴데굴 구른다. 정인이가 겪은 고통은 엄마라면 누구나 알아챘을 고통"이라고 했다.
이어 "그럼에도 정인이 몸에 여러 번 치명적인 손상이 있다는 것은 정인이 양모도 사망 가능성을 인식하고 (학대를) 했을 것"이라며 "저는 (이런 경우를)처음 봤다"고 강조했다.
정인이 양모 측은 반대심문을 통해 "췌장 파열이 CPR(심폐소생술)로 인한 것일 가능성은 없느냐"고 질의했다. 이에 유성호 교수는 "CPR은 흉부에 압박을 가하는데 췌장은 훨씬 밑쪽이다. 가능성이 낮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양모 측은 피해자에 대한 정서적 학대 혐의와 양육을 소홀히 했다는 등의 공소사실은 모두 인정했다. 그러나 주의적 공소사실인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에 대해서는 여전히 강력 부인하고 있다.
양모 측은 "적어도 피해자 복부를 밟은 적은 없다. 미필적 고의로도 피해자를 죽이려고 했던 적은 없다"면서 "피해자 배를 한 대 세게 때린 적은 있지만 사망에 이를 정도로 강한 외력은 없었다. 여전히 피해자의 사망 가능성을 알 수 없었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학대 사실을 알고도 방조한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양부 안씨도 공소사실을 대부분 인정했다.
다만 양부 측은 "정서적 학대를 함에 있어서 처음부터 계획했던 것은 아니고 피해자와 친밀하게 지내려다 다소 과한 점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학대였다. 미필적 고의에 가까웠다"며 "피고인 장씨(부인)가 자신의 방식대로 양육할 것이라고 너무 믿었다"고 주장했다.
정인이는 지난해 1월 장씨 부부에게 입양돼 같은해 10월 서울 양천구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숨졌다. 사망 당일 췌장이 절단되는 심각한 복부 손상을 입은 상태였다.
검찰은 양모 장씨를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가 살인 혐의를 추가했다. 사망에 이른 외력의 형태와 정도뿐 아니라 장씨의 통합심리분석 결과, 학대의 전체적 경위, 사망의 결과 발생 가능성 정도 등 범행 전후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다음달 7일에는 정인양의 사인을 재감정한 이정빈 가천의대 교수가 증인으로 나올 예정이다. 특이사항이 없다면 같은 달 14일 재판이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다.
4월14일에는 증거조사와 피고인신문을 진행한 뒤 검찰은 최종의견과 함께 구형량을 밝히고 변호인은 최종변론을, 장씨와 안씨는 최후진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1심 결론은 올 5월 안에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김명일 한경닷컴 기자 mi73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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