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를 미술품으로 납부하는 물납제는 특정 기업에 특혜를 주기 위한 제도가 아닙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프랜시스 베이컨, 앤디 워홀의 원화 한 점 걸려 있지 않은 현실에서 문화강국이 되기 위한 토대를 쌓을 수 있는 장치인 것이죠.”
황달성 한국화랑협회장(68)은 17일 “물납제 도입을 위한 제도적·정책적 인프라를 마련하는 데 협회의 역량을 쏟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회장 취임 한 달을 맞아 가진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다.
미술계의 가장 큰 관심사는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남긴 미술 소장품, 일명 ‘이건희 컬렉션’이다. 현재 소장품의 가치를 측정하는 시가 감정이 마무리 단계다. 모네, 피카소, 자코메티 등 세계적인 걸작이 다수 포함돼 있으며, 감정 총액이 2조~3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때문에 문화예술계에서는 이 작품들이 해외로 유출되지 않고 국민이 함께 감상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황 회장은 “이건희 컬렉션이 보여주는 높은 예술적 안목은 존경스러운 수준”이라며 “이를 지켜야 한다는 데는 보수와 진보, 진영을 뛰어넘어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강조했다. 안목 높은 컬렉터가 일생 동안 이룩한 컬렉션을 전 국민이 즐길 수 있다면 한국의 문화적 역량 강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얘기다.
“물납제는 현재 법적·제도적 기초가 전혀 마련돼 있지 않아 지금 입법되더라도 삼성은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다만 이건희 컬렉션을 계기로 미술품 상속에 대한 관심이 커진 만큼 장기적으로 인프라를 갖춰가는 계기로 삼아야죠. 물납제의 핵심은 시가 감정의 정확성입니다. 화랑협회가 보유하고 있는 시가 감정 노하우를 공유하고 시스템을 보완하기 위해 여러 방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황 회장은 1992년부터 금산갤러리를 운영해온 미술계의 대표 주자다. 회장에 취임한 직후 열린 화랑미술제는 역대 최고 기록을 썼다. 4만8000여 명이 방문해 예년의 두 배를 웃도는 72억원어치의 작품을 사 갔다. 황 회장은 “최웅철 전 회장 등 이전 집행부가 탄탄하게 행사를 준비해주신 덕분”이라며 “코로나19에 지친 국민을 미술로 위로하겠다는 ‘아트백신’ 콘셉트가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회장으로서 세운 가장 큰 목표는 국내 최대 아트페어인 키아프(KIAF·한국국제아트페어)를 아시아 최대 행사로 키우는 것. 그는 국내 최고의 아트페어 전문가다. 2001년 키아프를 출범시킨 주역인 데다 아시아호텔아트페어 등을 기획, 운영한 노하우가 풍부하다. 이번에 협회장을 맡게 된 것도 “키아프를 아시아 최대 아트페어로 키워달라”는 미술계의 요청 때문이었다고 한다.
협회는 내년에 세계적 아트페어인 ‘프리즈’를 서울에서 개최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키아프와 ‘프리즈 서울’이 같은 기간에 나란히 열리는 방식이다. 2003년 영국 런던에서 시작된 프리즈는 아트바젤,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되는 피악과 함께 세계 3대 아트페어로 꼽힌다. 프리즈가 열리면 세계 각국의 미술 애호가와 투자자들이 런던으로 몰린다.
“프리즈 서울이 성사되면 서울이 아시아 미술시장의 중심으로 자리잡을 겁니다. 세계 미술 애호가들에게 한국 미술시장을 선보여 우리 작가들의 해외 진출이 활성화되고 관광산업 등 부가 효과도 클 것이고요. 키아프의 세계 진출도 준비 중입니다. 싱가포르, 부산 등으로 키아프 개최 지역을 확대하고 브랜드 가치를 높이겠습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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