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에서 번개처럼 사라지는 에클레어…오후의 여유 즐기는 애프터눈 티 세트

입력 2021-03-18 17:14   수정 2021-03-19 10:51


겹겹이 쌓인 얇은 파이 위에 벨기에산 화이트 초콜릿을 첨가한 가나슈(초콜릿 크림)를 올렸다. 여기에 검은색 바닐라빈이 콕콕 박혀 있는 진한 바닐라 크림을 한 번 더 얹었다. 하나의 장식품 같다. 한참을 눈으로 즐기다 한쪽 귀퉁이를 잘라 입에 넣었다. 순간 입가에 번지는 미소. 바삭하면서도 부드러웠다. 향긋하고 달콤했다. 프랑스 정통 디저트의 성지로 꼽히는 ‘위고에빅토르’에서 맛본 ‘바닐라 밀푀유’ 얘기다. 그렇게 20여 분간 프랑스로 여행을 떠난 것 같은 기분을 만끽했다.

수제 디저트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더 특별하고 맛있는’ 수제 디저트를 찾는 사람이 늘어서다. 하늘길이 막히자 디저트로 기분 전환을 꾀하며 이국적인 경험을 추구하는 흐름도 생겨나고 있다.
○사르르 녹는다…프랑스의 맛
수제 디저트 시장의 중심엔 프랑스 디저트가 있다. 프랑스 디저트는 세계에서 사랑을 받는다. 마카롱, 마들렌, 카눌레 등 유명 디저트는 대부분 프랑스에서 탄생했다. 디저트는 ‘식후에 식탁을 치우다’는 뜻의 프랑스어 ‘desservir’에서 유래했다.

밀푀유는 프랑스어로 ‘천 겹의 잎사귀’라는 뜻이다. 파이의 바삭한 맛과 바닐라 크림의 부드러운 식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프랑스식 고급 디저트다. 위고에빅토르에선 한 조각이 8700원에 판매된다. 이곳은 나흘간 까다롭고 복잡한 공정을 거쳐 이 밀푀유를 만든다. 프랑스 파리는 물론 한국, 일본, 두바이 등에서 프랑스 디저트를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서울 명동 롯데백화점 본점에 국내 1호점이 있다.

‘초콜릿 에클레어(7800원)’도 인기 메뉴다. 에클레어는 프랑스어로 ‘번개’를 뜻한다. 맛있어서 입속에서 번개처럼 사라진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길게 구운 페이스트리 안에 프랑스산 베네수엘라 초콜릿으로 만든 쇼콜라 크레메를 가득 채웠다. 부드럽고 진한 버터 향에 겉은 쫄깃하고 속은 촉촉한 ‘피낭시에(3000~3800원)’ 역시 스테디셀러다. 심재성 위고에빅토르 롯데백화점본점 점장은 “프랑스 디저트는 달콤한 맛은 기본이고 특유의 색감과 디자인 덕분에 눈까지 즐거움을 준다”고 했다.
○여긴 어디? 영국, 홍콩에 온 듯
영국, 홍콩 등에서 발달한 ‘애프터눈 티’는 고급 디저트 문화의 상징으로 통한다. 특급호텔, 서울 압구정 등에서 주말 애프터눈 티를 즐기려면 2주일 전에 예약해야 한다. 20~30대 여성을 중심으로 디저트를 메인 식사처럼 먹고 마시는 열풍이 확산돼서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 전 해외에서 즐겼던 애프터눈 티를 떠올리며 ‘기분을 내는’ 소비자가 많다”고 했다.

가격대는 2명 기준 6만~8만원대다. 서울 중구에 있는 코트야드메리어트 남대문호텔의 모모카페는 ‘애프터눈 티 명소’ 중 한 곳이다. 이곳에선 한 명당 3만원(2명 이상 주문 가능)에 타르트 등 10여 종의 딸기 디저트로 구성된 애프터눈 티를 맛볼 수 있다. 다채로운 디저트를 2~3층으로 층층이 쌓아올려 커피 또는 티와 곁들여 먹으면 충분히 배부르다.
○마카롤·마쿠아즈…달달한 변신
디저트의 진화는 끝이 없다. 각기 다른 디저트의 장점을 모아 살린 ‘퓨전 디저트’ 시장도 인기다. 마카롱과 다쿠아즈를 합친 ‘마쿠아즈’ 또는 ‘다카롱’, 백설기와 카스텔라를 접목한 ‘백설기카스테라’ 등 새로운 상품이 다양하다.

서울 상수동 디저트 카페 ‘르쁘띠푸’의 대표 메뉴인 ‘마카롤’은 마카롱과 롤케이크를 합쳤다. 한 조각에 6400원. 하루 평균 100개가량 꾸준히 팔린다. 인기에 힘입어 서울 여의도 더현대서울 등 백화점에도 입점했다. 마카롤은 롤케이크처럼 보이지만 빵 위에 마카롱 ‘꼬끄’의 바삭하고 쫀득한 식감을 더했다. 마카롤을 개발한 김대현 르쁘띠푸 셰프(55)는 “독특한 디저트를 찾아 먹어보고, 선물하는 트렌드가 확산됐다”며 “마카롱보다 열 배 이상 손이 가지만 보람이 있다”고 말했다.


호떡을 고급 디저트로 탈바꿈시킨 사례도 있다.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선 올해 ‘플러피 클라우드’라는 이름의 호떡 디저트를 선보였다. 하나에 2만1000원. 길거리 호떡보다 20배 비싸지만, 이곳의 인기 메뉴다.

이 디저트는 마카다미아, 호두, 피스타치오가 알알이 박힌 호떡 위에 수제 바닐라 아이스크림, 솜사탕을 올렸다. 호떡은 24시간 저온 숙성한 반죽에 천연 비정제 설탕으로 맛을 냈고, 아이스크림은 바나나 한 개를 통째로 갈아 만들었다. 차승훈 웨스틴조선호텔 주방장(48)은 “디저트에 대한 소비자 눈높이가 높아져 메인 요리만큼 공을 들인다”며 “맛있고 보기에 좋으면서 건강까지 생각하는 ‘3박자’를 갖춰야 사랑받는다”고 했다. 다음달 새로운 디저트도 준비 중이다.
○비싸도 찾는다…작은 사치
수제 디저트는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는 일반 디저트에 비해 재료 원가가 비싸고 손이 많이 간다. 가격도 두세 배 이상 높다. 밥값보다 비싼 디저트도 수두룩하다. 그런데도 꾸준히 팔린다.

푸드콘텐츠디렉터 김혜준 씨(40)는 “디저트 하나도 특색 있고 맛있는 것을 골라 먹겠다는 소비자가 많아지면서 수제 디저트 시장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경기 불황에 집과 차, 명품을 사기 부담스러워지자 ‘작은 사치’ 격으로 디저트 문화가 발달한 것이란 분석도 있다. 김씨는 “1만~8만원대의 소비로 단번에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게 디저트의 매력”이라고 했다.


다만 디저트를 즐길 때 몇 가지 규칙을 정하는 게 좋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전형주 장안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적당한 당분을 섭취하는 것은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며 “디저트는 150~200㎉ 기준 1주일에 2~3회 먹는 것을 추천한다”고 했다. 전 교수는 “밀가루와 설탕을 줄이고 과일, 올리고당 등 건강한 당분을 활용한 디저트를 고르라”고 조언했다.

정지은/최다은 기자 je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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