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로제, 중대재해처벌법 등 정부 규제로 신음하는 산업 현장에 원자재 가격 급등이라는 악재가 덮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위축됐던 미국, 중국 등 주요국의 산업활동이 기지개를 켜며 원자재 수요가 크게 늘면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제 철광석 가격(중국 칭다오항 수입가 기준)은 지난 17일 현재 166.19달러를 기록했다. 작년 동월(최저 80달러) 대비 두 배 수준이다. 2월 말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발표한 구리·알루미늄 등 비철금속 가격지수(LMEX)는 연초 대비 평균 14% 상승했다. 원자재를 수입해 중간재를 생산하는 중소 제조업체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의자나 소파에 사용되는 가죽도 1×1m 크기가 5000원에서 6000~6500원까지 상승했다. 김현석 대한가구산업협동조합연합회 전무는 “중국이 태국·말레이시아산 원자재를 싹쓸이하면서 PB는 물론 가죽, 부직포 등 각종 부자재 가격까지 뛰고 있다”고 말했다. “통상 1분기는 학교 등 관공서 납품이 많은 성수기인데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설명이다.
제지업계도 고전하고 있다. 인쇄용지와 화장지 재료가 되는 펄프값이 작년 3월 t당 541달러 수준에서 최근 650달러로 1년 새 20% 이상 올랐기 때문이다. 제지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수요 증가와 해상 운임 등 물류비 증가로 당분간 펄프값이 강세를 보일 것”이라며 “펄프를 수입하는 제지업계로서는 수익성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전선 내 구리를 감싸는 절연재와 피복재의 소재가 되는 염화비닐모노머(VCM), 폴리에틸렌의 가격은 1년 만에 50~80% 올랐다. 원료인 원유 가격이 급등한 여파다.
가공 과정에서 윤활유를 많이 쓰는 단조업계나 전기를 많이 써야 하는 열처리업계도 신음하고 있다. 강동한 한국단조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원자재 가격과 원·달러 환율 상승세가 겹쳐 원가 부담이 작년보다 20% 가까이 늘었다”며 “올해 대부분 업체가 영업이익을 내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단조업계는 전체 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70%에 이른다.
올해부터 전기요금에 연료비 변동을 반영하는 전기요금 연료비 연동제가 시행되면서 뿌리기업들이 내야 할 전기료 부담도 커질 전망이다. 한 뿌리기업 사장은 “원자재값이 뛰고 전기료도 오르는 상황에서 최저임금 등 규제 비용까지 늘어나니 견딜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상승 추세를 보이는 환율도 걱정거리다. 원자재를 수입해야 하는 기업들에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미래전략연구단장은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높아진 가운데 원자재, 환율, 금리까지 한꺼번에 오르면서 중소 제조업계가 ‘4중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주로 중간제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들이 원자재 가격 인상이라는 위험요인 탓에 모처럼 찾아온 경기 회복의 기회를 충분히 누리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우려했다.
안대규/이정선 기자 powerzenic@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