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그들이 대한민국의 미래다

입력 2021-03-18 17:44   수정 2021-04-09 17:27

“고생 많다. 잘 봤다. 고맙다.” ‘AI미래포럼’ 출범 기념 웨비나가 끝나자마자 눈길을 끄는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3시간에 걸친 ‘AI(인공지능) 기술발전과 한국의 대응’을 끝까지 경청했다는 내용이었다. 한국경제신문이 올초 ‘올( all) 디지털’로 열린, 세계 전자업체가 다 모인다는 CES 2021을 분석한 ‘AI대학원장 9인과의 대화’도 챙겨봤다고 했다. 갤럭시S 신화 창시자 신종균 삼성전자 고문이었다.

“5세대(5G) 통신이 어떻게 탄생한지 아나. 세계 통신사가 모이는 MWC에서 미국 버라이즌 최고경영자와 의기투합했다. 표준의 역할을 분담하고 국내로 돌아오니 삼성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전문가를 찾았다. 산·학을 엮으니 작품이 나오더라.” “AI도 산·학이다. 끈질기게 해달라.”

처음엔 ‘AI 100인회’였다. ‘맨땅에 헤딩한다’는 말처럼 100명을 모은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허브’급 전문가를 찾는 게 급선무였다. 운 좋게도 AI경제연구소 자문위원장인 김진형 중앙대 석좌교수 겸 KAIST 명예교수는 걸어다니는 클러스터였다. 수직 계보가 들어왔다. 한국공학한림원 포럼에서 딱 한 번 만난 하정우 네이버 AI랩 소장은 수평 계보를 지니고 있었다. 두 계보를 합치니 종(縱)·횡(橫)으로 연결된, 20대에서 70대까지 ‘전문가 지도’가 완성됐다.

“이제 됐다” 싶었던 순간, ‘여성 전문가 절대 부족’이란 점을 깨닫게 해준 건 오혜연 KAIST 교수였다. 다양성 관점에서 보면 ‘AI 100인회’는 처음부터 편향이었다. ‘AI미래포럼’으로 바꿨다. 릴레이 추천을 호소했다. 한국에 여성 AI전문가가 많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무지와 고정관념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 없었다.

포럼 참여는 또 다른 문제였다. 기업은 비밀주의가 강하다. 기우였다. LG그룹 AI책임자 전원이 동참을 선언했다. 신 고문의 지지 덕분인지 삼성리서치도 AI전문가 참여를 허락했다. 현대자동차 포스코 SK텔레콤 KT 네이버 카카오 엔씨소프트 등의 AI인재도 합류했다.

AI스타트업 대표들의 동참 열기도 뜨거웠다. “경제 미디어가 국가적으로 좋은 일 한다”며 한 스타트업이 다른 스타트업을 불러들였다. 세상이 변했다. 기업은 빠르다. 개방과 협력으로 가지 않으면 생존도 성장도 할 수 없다는 걸 간파한 것이다.

실리콘밸리 경쟁력은 이민과 교육, 연구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스탠퍼드대 2021년 AI 인덱스에 따르면 미국에서 배출한 AI박사 중 3분의 2가 외국인이었다. 혁신생태계 핵심은 인재 클러스터다. 산·학 협력이 기본이다. 북미 대학을 나온 AI박사 65%가 기업에 취업했다. 2010년 44%에서 크게 증가했다. AI 연구의 원천은 대학이지만 기업도 논문의 19%를 생산했다. 혁신에는 ‘임계규모(critical mass)’가 작용한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神)’으로 불리는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가난, 허약, 무학(無學)이 성공 요인”이라고 했다. “가난한 ‘덕분에’ 별일 다 해봤다. 허약한 ‘덕분에’ 운동을 했다. 못 배운 ‘덕분에’ 무조건 익혔다.” 불리함을 유리함으로 바꾼 발상의 전환이다. 한국을 일군 개척자들도 그랬다.

환경이 달라지고 주체가 달라지면 과거의 성공 방정식을 강요할 수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미래세대는 그들의 성공 공식을 쓰게 해야 한다. 다행히 지금의 한국은 가진 게 많다. 세계 최고 정보기술(IT) 인프라에 강한 제조업 등 산업포트폴리오가 좋다. 정치인은 입으로만 ‘공정’ ‘정의’를 떠들지만, AI전문가는 ‘좋은 사회를 향한 AI’를 말없이 실천하고 있다.

정치가 할 일은 AI인재 한 명 한 명이 꿈을 펼칠 수 있게 AI 인프라를 깔고 자유를 주는 것이다. 이것만 해 주면, 한국이 미국과 중국의 틈새를 뚫고 게임 체인저의 한 축을 틀어쥐며 ‘인류를 위한 AI강국’으로 우뚝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들이 대한민국의 미래다.

a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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