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대(5G) 통신이 어떻게 탄생한지 아나. 세계 통신사가 모이는 MWC에서 미국 버라이즌 최고경영자와 의기투합했다. 표준의 역할을 분담하고 국내로 돌아오니 삼성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전문가를 찾았다. 산·학을 엮으니 작품이 나오더라.” “AI도 산·학이다. 끈질기게 해달라.”
처음엔 ‘AI 100인회’였다. ‘맨땅에 헤딩한다’는 말처럼 100명을 모은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허브’급 전문가를 찾는 게 급선무였다. 운 좋게도 AI경제연구소 자문위원장인 김진형 중앙대 석좌교수 겸 KAIST 명예교수는 걸어다니는 클러스터였다. 수직 계보가 들어왔다. 한국공학한림원 포럼에서 딱 한 번 만난 하정우 네이버 AI랩 소장은 수평 계보를 지니고 있었다. 두 계보를 합치니 종(縱)·횡(橫)으로 연결된, 20대에서 70대까지 ‘전문가 지도’가 완성됐다.
“이제 됐다” 싶었던 순간, ‘여성 전문가 절대 부족’이란 점을 깨닫게 해준 건 오혜연 KAIST 교수였다. 다양성 관점에서 보면 ‘AI 100인회’는 처음부터 편향이었다. ‘AI미래포럼’으로 바꿨다. 릴레이 추천을 호소했다. 한국에 여성 AI전문가가 많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무지와 고정관념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 없었다.
포럼 참여는 또 다른 문제였다. 기업은 비밀주의가 강하다. 기우였다. LG그룹 AI책임자 전원이 동참을 선언했다. 신 고문의 지지 덕분인지 삼성리서치도 AI전문가 참여를 허락했다. 현대자동차 포스코 SK텔레콤 KT 네이버 카카오 엔씨소프트 등의 AI인재도 합류했다.
AI스타트업 대표들의 동참 열기도 뜨거웠다. “경제 미디어가 국가적으로 좋은 일 한다”며 한 스타트업이 다른 스타트업을 불러들였다. 세상이 변했다. 기업은 빠르다. 개방과 협력으로 가지 않으면 생존도 성장도 할 수 없다는 걸 간파한 것이다.
실리콘밸리 경쟁력은 이민과 교육, 연구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스탠퍼드대 2021년 AI 인덱스에 따르면 미국에서 배출한 AI박사 중 3분의 2가 외국인이었다. 혁신생태계 핵심은 인재 클러스터다. 산·학 협력이 기본이다. 북미 대학을 나온 AI박사 65%가 기업에 취업했다. 2010년 44%에서 크게 증가했다. AI 연구의 원천은 대학이지만 기업도 논문의 19%를 생산했다. 혁신에는 ‘임계규모(critical mass)’가 작용한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神)’으로 불리는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가난, 허약, 무학(無學)이 성공 요인”이라고 했다. “가난한 ‘덕분에’ 별일 다 해봤다. 허약한 ‘덕분에’ 운동을 했다. 못 배운 ‘덕분에’ 무조건 익혔다.” 불리함을 유리함으로 바꾼 발상의 전환이다. 한국을 일군 개척자들도 그랬다.
환경이 달라지고 주체가 달라지면 과거의 성공 방정식을 강요할 수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미래세대는 그들의 성공 공식을 쓰게 해야 한다. 다행히 지금의 한국은 가진 게 많다. 세계 최고 정보기술(IT) 인프라에 강한 제조업 등 산업포트폴리오가 좋다. 정치인은 입으로만 ‘공정’ ‘정의’를 떠들지만, AI전문가는 ‘좋은 사회를 향한 AI’를 말없이 실천하고 있다.
정치가 할 일은 AI인재 한 명 한 명이 꿈을 펼칠 수 있게 AI 인프라를 깔고 자유를 주는 것이다. 이것만 해 주면, 한국이 미국과 중국의 틈새를 뚫고 게임 체인저의 한 축을 틀어쥐며 ‘인류를 위한 AI강국’으로 우뚝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들이 대한민국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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