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말기부터 유럽은 인구가 늘면서 도시가 북적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든 주된 이유는 상업이 부활했기 때문이다. 이 무렵 농업 생산성이 개선되면서 자급자족 수준을 넘어 시장에서 교환할 만한 잉여 생산물이 만들어졌다. 외교적으로는 무슬림과의 오랜 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들면서 그간 중단됐던 지중해 무역이 재개된 시기이기도 하다.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은 지중해의 동과 서를 잇는 중계무역 기지로 부활했다. 아드리아해로 향한 베네치아는 동쪽의 시리아와 남쪽의 아프리카 무슬림과 교역하며 번성했다.
피사와 제노아도 지중해 서쪽의 상권을 장악한 무역도시로 성장했다. 북부 독일에서는 상인들의 조합인 한자가 형성됐다. 독일어 ‘Hanse’는 무리나 친구라는 뜻의 고트어에서 유래한 말로 조합을 의미한다. 한자동맹은 지중해 쪽에 비해 발전이 더뎠던 발트해 주변의 상인들이 도시 간 교류 증대를 목적으로 만들었다. 주로 쾰른, 브레멘, 베를린, 함부르크 등 독일권 도시들이 가입했다. 한자동맹이란 이름은 오늘날 독일의 항공사 루프트한자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지중해와 발트해의 도시들은 옛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도시 인근의 농촌을 배후지로 두고 강력한 군사력을 갖춘 도시국가를 재현해냈다. 이들은 신항로 개척으로 무역의 중심이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번영을 누렸다. 지중해와 북해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도시국가 체제의 상업경제가 부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그건 고대 상업경제의 두 가지 유산, 그리스의 화폐제도와 로마법의 정신을 어느 곳보다 잘 간직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유재산제와 자유계약정신을 보호한 덕분이었다. 유럽 도시국가들은 르네상스의 주역이었고 이후 산업혁명과 현대적 시장경제가 출현하기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맡았다.
이들 세 나라는 역사적으로 영국, 프랑스, 독일 등 큰 나라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래서 눈길을 바다로 돌려 해외시장을 개척했다. 이들의 타고난 상인 기질은 이때 빛을 발했다. 벨기에는 중앙아프리카에, 네덜란드는 동남아시아에 식민지를 만들었다. 오늘날 세계의 수도가 된 뉴욕은 네덜란드 출신 개척자들이 모여 산 뉴암스테르담으로부터 유래했다. 네덜란드 상인은 머나먼 극동의 일본에까지 진출해 난학이라고 불린 일본 속의 네덜란드 문화를 형성했다.
오늘날에도 베네룩스 3국의 산업엔 무역과 물류, 금융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네덜란드의 로테르담 항구는 세계 최대 규모로 유럽 해상 무역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세계에서 수입되는 각종 원자재와 곡물이 로테르담에서 하역해 유럽 전역으로 수송되고 반대로 유럽에서 모여든 제품이 로테르담을 통해 세계로 수출된다.
유럽은 베네룩스 3국 외에도 스위스, 오스트리아, 북유럽 국가 등 강소국이 참 많다. 국토는 좁고 부존자원은 없는 상황을 딛고 성공한 강소국에서 우리가 나아갈 길을 찾는 건 그래서 당연한 일이다. 한때 재계에서 강소국을 배우자는 움직임이 일었고 정계에서도 우리의 정체를 강소국 연방제로 바꾸자는 논의가 오가기도 했다. 비록 그 뒤 관심의 초점이 독일과 같은 미들파워로 옮겨 가면서 강소국 이야기는 잦아들었지만, 베네룩스 3국이 보여준 진취적인 통상과 개방의 정신은 무역으로 먹고사는 우리 경제에 시사하는 바가 여전히 크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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