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춘분(3월 20일)을 지나면서 봄기운이 더욱 완연해졌다. 온갖 꽃이 피어나 본격적으로 봄을 맞이하는 계절이다. 그것을 ‘봄맞이’ 또는 ‘봄마중’이라고 부른다. 예로부터 “들로 산으로 봄맞이(또는 봄마중) 가는 철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봄마중’에 대해서는 우리 국어사전들이 좀 인색한 듯하다.
‘봄마중’은 아직 사전에 오르지 못해
‘애기종달새 푸른하늘 놉히떠서 노래부르네 욜로절로 하로종일 날러다니며 봄마중을 나가자고 노래부르네….’ 일제강점기 때인 1930년 5월 4일자에서 조선일보는 ‘종달새 노래’란 시로 이땅에 봄이 왔음을 알렸다. ‘봄마중’은 ‘봄맞이’와 함께 오랜 세월 우리 일상에서 쓰인 익숙한 단어다. 하지만 아쉽게도 사전에서는 이 말을 찾아볼 수 없다.50여만 단어를 수록해 가장 큰 규모라는 인터넷 《표준국어대사전》(국립국어원)에도 ‘봄마중’은 나오지 않는다. 정식 단어로 인정받기 전의 개방형 사전인 《우리말샘》에서는 이 말을 ‘봄맞이의 북한어’로 올렸다. 그런데 이 풀이는 실은 《표준국어대사전》이 처음 간행된 1999년판 종이사전에 실렸던 것이다. 2016년 《우리말샘》을 개통하면서 《표준국어대사전》에 있던 표제어 ‘봄마중’을 옮겼을 것이다. ‘봄마중’은 지금도 여전히 ‘북한말’이라는 굴레를 쓴 채 사전에 오르지도 못하고 홀대받는 셈이다.
남산 케이블카는 언제 생겼을까? 1962년 5월 19일자 조선일보는 ‘장안을 한눈 아래’라는 제목으로 남산 케이블카 개통(5월 12일) 소식을 알렸다. “「은하수」 「무지개」라고 고운 이룸을 붙인 두 대의 「케이블·카」가 … 605미터의 「하늘길」을 4분에 달려 올라갔다 내려온다.” 여기 나오는 ‘하늘길’은 지금의 쓰임새와는 좀 다르다. 공중(하늘)에 떠 있는 길이란 뜻에서 하늘길이라고 붙였다. 이를 홑낫표(「 」)로 싸줘 당시에도 일상적으로 쓰는 말이 아님을 드러냈다. 요즘 ‘하늘길’은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날아가는 길을 뜻한다. “코로나로 하늘길 막혔다”처럼 쓰인다.
입에 착 달라붙어야 잘 다듬은 말
이 ‘하늘길’이 우리 곁으로 다가온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언론 등에서 간간이 쓰긴 했지만, 국어사전엔 실리지 못했다. 1992년 한글학회에서 펴낸 《우리말 큰사전》은 물론 1999년판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정식 단어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말의 정체는 ‘북한어’였다. 남에는 ‘하늘로 다니는 길’에 대한 토박이말이 없었다. 그것은 ‘항공로(항로)’, ‘비행로’란 한자어로만 있었다. 북한에서는 이를 1992년 《조선말대사전》을 펴내면서 ‘하늘길’로 순화했다. 그것을 받아들여 지금은 우리 인터넷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하늘길’을 볼 수 있다.“정치권 향한 쓴소리.” “여야, 軍 경계 실패에 쓴소리.” 언론 기사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쓴소리’도 오랫동안 써왔으나 사전적으론 우리말이 아니었다. 2000년대 전까지 ‘고언(苦言)’의 북한어였을 뿐이다. 언중 사이에서는 이미 1990년대부터 활발하게 쓰였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를 통해 보면 이 말 역시 일제강점기 때부터 그 쓰임새가 보인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야 비로소 북한어란 굴레를 벗고 인터넷 《표준국어대사전》에 단어로 반영됐다.
말 다듬기의 원리는 간단하다. 무엇보다도 의미를 정확히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거기다 쉽고 일상적인 어휘라 눈에 익은 말이면 더 좋다. 항로 또는 항공로니 고언이니 하는 말보다 ‘하늘길’ ‘쓴소리’ 같은 말이 훨씬 입에 달라붙는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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