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미얀마 유혈사태 외면하는 중국

입력 2021-03-19 17:36   수정 2021-03-20 00:08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가 19일로 47일째를 맞았다. 쿠데타를 규탄하는 미얀마 시민들의 시위는 날로 격화하고 있다. 군부의 강경 진압에 민주주의를 외치는 시민들이 벌써 200명 이상 사망했다.

미얀마 군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도 거세지고 있다. 군부의 만행을 사실상 용인한 중국에 대한 여론도 악화하고 있다. 중국은 이번 쿠데타를 ‘내정’으로 규정하며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도 미얀마 군부에 양국을 연결하는 대형 원유·천연가스 수송관에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당부하는 등 자국의 이익과 관련한 문제는 꼼꼼히 챙기고 있다. 상대국 권력을 누가 잡든 내 이익만 지키면 된다는 ‘실리 외교’를 다시 꺼내든 것이다.

중국은 쿠데타 발발 시점부터 배후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아왔다. 미얀마 민주화 시위대는 왕이 중국 외교부 장관 겸 국무위원이 지난 1월 미얀마를 방문해 이번 쿠데타를 주도한 민아웅흘라잉 미얀마군 최고사령관을 면담한 자리에서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미얀마 군부 규탄 성명에선 중국과 러시아 등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쿠데타’라는 말이 빠지기도 했다.

쿠데타 이후 미얀마의 중국대사관 앞에서 연일 반중 시위가 벌어지고 중국 제품 불매 운동도 진행되고 있다. 미얀마 내 중국계 공장 수십 곳이 공격을 받아 재산 피해를 입기도 했다. 미얀마 주재 중국대사관이 폭력 행위 중단과 가해자 처벌을 촉구하자 반중 감정은 더욱 고조됐다. “수많은 미얀마 시민이 군부 총탄에 목숨을 잃은 마당에 자신들의 공장이 불탔다고 시민들을 더 죽이라는 거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중국계 사업장 화재에 대해 미얀마 내에선 군부가 중국과 손잡고 자작극을 벌였다는 주장도 나온다. 미얀마 내정에 간섭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려는 시도라는 지적이다. 자국 기업과 교민들의 안전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도 철수 지시를 내리지 않는 것도 의문시되고 있다.

중국은 이런 의혹들에 대해 전혀 근거가 없다고 일축하고 있다. 다만 군부의 배후이든 아니든 중국이 유리해졌다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 이번 쿠데타로 미국과 유럽 등 서방이 미얀마 군부에 대한 제재를 강화할수록 군부는 중국에 더 가까워질 것이기 때문에다.

중국은 미얀마를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전략의 핵심 거점으로 삼고 있다. 군부뿐 아니라 아웅산수지 정부에도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내온 이유다. 미얀마가 에너지 안보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중국이 중동에서 수입하는 석유는 대부분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사이의 믈라카 해협, 분쟁지역인 남중국해를 지난다. 미국 해군이 언제든 차단할 수 있는 지역이다.

중국은 윈난성 쿤밍부터 미얀마 서쪽 해안도시인 차우크퓨까지 1025㎞의 가스관과 771㎞의 송유관을 각각 2014년과 2015년 개통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 차우크퓨에 대규모 항구와 산업단지도 짓고 있다. 최종적으로는 이 지역에 해군을 주둔시켜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4개국 안보 협의체인 쿼드(Quad)의 가장 약한 고리인 인도를 견제한다는 속셈이다.

‘이기는 편이 우리 편’이란 식의 중국 외교 전략은 미얀마 쿠데타를 계기로 또 한번 민낯을 드러냈다. 상대국의 자유나 인권문제에는 눈을 감으면서 자국의 이익에는 득달같이 달려드는 실리 외교를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아웅산수지 국가고문을 지지하는 미얀마 대중은 중국의 이런 행태를 가슴깊이 새겨둘 게 틀림없다. 미얀마 시민의 반중 감정이 캄보디아와 라오스 등 주변국들에 퍼지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중국이 위대한 업적이라고 자평하는 일대일로는 이미 많은 동남아 개발도상국에서 ‘부채 함정’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중국은 최근 지속적으로 “미국을 넘어 세계 최강국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이를 위해 “평화적인 외교정책을 견지하며 국제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대외 정책도 내놨다. 하지만 이웃 나라에서 벌어지는 폭력에 눈감고, 신장위구르자치구와 홍콩 인권 문제에 대한 지적에는 ‘핵심 이익’이라며 이빨을 드러내는 외교 행태를 보면 이런 선언들이 너무나 공허해 보인다.
미얀마의 對중국 적자 갈수록 커져
미얀마 경제의 중국 의존도는 2015년 아웅산수지 국가고문이 이끄는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더욱 심해졌다. 서방의 무관심이 지속되는 동안 시장 개방의 과실을 중국이 고스란히 따먹었다는 분석이다.

중국은 미얀마의 최대 교역국이자 싱가포르에 이은 두 번째 투자국이다. 2015년 111억달러였던 양국 간 교역은 2019년 161억달러(약 18조2000억원)로 커졌다. 대(對)중국 무역 적자는 같은 기간 16억달러에서 68억달러로 급증했다.

군부에 의해 20여 년간 가택연금을 당했던 아웅산수지 고문은 집권 이후 친서방 정책을 펼칠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해외 자본 유치를 위한 시스템 구축은 더뎠고 해외 기업들의 관심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 틈새를 중국이 파고들었다는 지적이다.

2017년 9월 발생한 미얀마군의 로힝야족 무슬림 탄압은 아웅산수지 정부가 중국으로 기우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국제사회가 일제히 아웅산수지 고문을 비난할 때 중국은 ‘내정 불간섭’을 내세우며 그를 지지했다. 아웅산수지 정부는 이후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에 적극 호응했다. 미얀마와 중국이 지난해 체결한 투자협정만 33건에 이른다.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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