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금 보장’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회사 자금이 주식시장에 유입된 이유는 장기화되고 있는 초저금리 기조 때문이다. 수도권에 본사를 둔 화장품원료 제조기업 A사는 3개월 단기채와 예금으로 운용하던 법인 자금으로 작년 10월부터 주식 투자에 나섰다. 첫 투자는 300억원 규모. 주로 안정성이 높은 삼성전자, LG화학, 현대차 등 대형주를 매수했다. 짭짤한 수익을 내자 작년 말 투자 금액을 1000억원까지 늘렸다. 회사 관계자는 “당분간은 주식투자 수익률이 예금 이자율을 앞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 주식투자 비중을 조금 더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주식 거래를 하는 법인 수 자체가 늘었다. 지난해 삼성증권 창구를 통해 주식을 매수한 법인은 2097곳으로 한 해 전(1002곳)보다 약 2배로 늘었다. 예금에 넣어뒀던 회사 자금을 빼내 연 1%라도 높은 투자처로 옮기려는 수요가 늘면서다.
유례없는 유동성 파티를 누리고 있는 공모주 시장에도 법인 자금이 몰려들고 있다. 기업공개(IPO) 예정 공모주 청약에 수백억원의 자금을 투자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공모주는 위험자산인 주식에 투자하더라도 상장 첫날 시초가가 공모가의 90% 이상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투자 안정성이 높다.
올해도 법인 자금은 주식시장으로 계속 흘러들어오고 있다. 올해 2월 말까지 법인의 주식 거래 금액은 10조원이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강환구 NH투자증권 영업부법인센터장은 “중소·중견기업 가운데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기업들은 유동성이 풍부해지면서 여러 가지 자금 운용법을 고민하는 곳이 많다”며 “예금성 상품에만 집중됐던 회사 자금이 주식, 채권, 대체투자상품 등으로 유입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견 건설사 서희건설이 대표적이다. 서희건설은 2019년만 해도 삼성전자, 삼성바이오로직스, 카카오 등 국내 주식에만 투자했지만 작년에 애플(AAPL), 테슬라(TSLA), 아마존(AMZN) 등 해외주식으로 투자 범위를 넓혔다. 퍼스트트러스트, 글로벌X, 위즈덤트리 등 글로벌 운용사의 클라우드컴퓨팅 관련 상장지수펀드(ETF)와 퀄컴, NXP반도체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도 투자했다. 작년 말 기준 국내주식 보유금액은 487억원, 해외주식은 512억원에 이른다.
비씨월드제약도 작년에 처음으로 해외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작년 말 투자 종목 16개 중 15개가 외국기업이다. 중국 신약개발기업 항서제약과 글로벌X 원격의료&디지털헬스 ETF(EDOC) 등 같은 의료업종에 투자했다. 아울러 글로벌X 클린테크 ETF(CTEC), GLOBAL X 중국 클린에너지 ETF, 미국 수소기업 플러그파워(PLUG) 등 친환경주 투자 비중이 높았다.
전자제품 제조업체 경인전자는 신생 기업에 베팅했다. 미국 클라우스 서비스기업 스노플레이크에 2억3000만원을 투자 중이다. 스노플레이크는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이 이례적으로 이 회사의 공모주에 투자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주목받은 기업이다. 미국 식물성 고기 제조업체 비욘드미트 주식도 2억원어치 보유하고 있다.
MMT와 유사하게 단기채권, 어음, 양도성 예금증서(CD) 등 초단기금융투자상품에 투자하는 펀드인 MMF의 설정액도 같은 기간 18조690억원이 늘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특히 MMT는 잔액의 90%가량이 일반법인의 여유자금으로 추정될 만큼 법인들에 인기가 있다”고 설명했다.
박재원/전범진/한경제 기자 wonderf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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