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욕망은 무한하지만 이를 채워줄 수 있는 자원은 유한하다’. 경제학 원론 첫 페이지를 열면 가장 먼저 접하는 ‘자원의 희소성 법칙’이다. 경제학의 알파(α)이자 오메가(Ω)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 법칙을 어떤 방법으로 풀 것인가가 최근 벌어지고 있는 가치주와 성장주 간 논쟁의 해답과 직결된다.
가장 간단하고 이상적인 해결책은 시장 신호에 의한 방법이다. 특정 재화에 대한 욕망이 강한 시장 참가자는 높은 가격을 써낼 의향이 있고, 그 신호대로 해당 재화를 배분하면 경제학의 양대 목표 중 하나인 효율성을 가장 극대화할 수 있다. 이런 상태에서는 모든 경제주체가 시장경제에 매력을 느낀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간단하기 때문에 복잡하고, 이상적이기 때문에 달성하기 힘들다. 완전경쟁은 아니더라도 시장이 잘 작동되기 위해서는 공급자, 수요자 등 시장 참가자 수가 많아야 하고 제품의 질도 가능한 한 동질적이어야 한다. 정보의 비대칭성도 크게 차이가 나서는 안 된다.
제품도 ‘경합성’과 ‘배제성’의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경합성이란 특정 재화를 차지하기 위한 시장 참가자 간 경쟁을, 배제성이란 가격을 지불한 시장 참가자만 특정 재화를 소비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이런 전제와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시장에 맡기는 것이 더 안 좋은 결과, 즉 ‘시장의 실패’를 낳을 수 있다.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합리적 인간’을 가정한 주류 경제학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되고 있다. 합리적인 인간이라는 가정이 무너진다면 자유와 창의를 바탕으로 한 시장경제에도 변화가 올 수밖에 없다. 시장 실패 부문에 대해서는 국가가 개입할 수밖에 없는 정당성을 부여해 주기 때문이다.
경제학을 접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얘기를 거론하는 것은 코로나 사태 이후 더욱더 근본적인 곳에 문제가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이든 정부 개입이든 자원의 희소성 법칙을 해결하기 위한 주체인 인간은 ‘합리적’이어야 하고, 제품의 ‘가치’와 ‘가격’은 일치돼야 한다는 것이 양대 전제다.
시장에서 인간의 합리성은 갖고자 하는 특정 재화 제품의 가치와 가격으로 나타난다. 가치에 합당한 가격, 즉 돈을 지급하면 ‘합리적’, 그렇지 못하면 ‘비합리적’으로 판단된다. 화폐의 3대 기능인 교환의 매개, 가치저장, 회계단위 중 가치저장기능이 가장 중시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코로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돈이 많이 풀리면서 가치저장기능이 약화됐고, 이에 따라 제품의 가치와 가격 간 괴리가 심하게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때는 특정 재화에 돈이 너무 많이 몰려 해당 재화의 가치에 비해 가격이 높게 형성됨에 따라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인간의 전제가 시장에서는 깨진 것으로 비친다. 게임 이론으로 보면 가치에 비해 돈을 많이 번 기업가(투자자)는 ‘대박’이 나고, 돈을 많이 지급한 소비자(투자자)는 ‘쪽박’을 차게 된다.
반대의 경우도 흔하다. 특정 재화의 가치에 비해 가격이 너무 낮게 형성되는 경우다. 수확 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인터넷, 모바일 등의 발전으로 증강현실 시대가 가능해짐에 따라 자원의 공간적 한계가 넓어지고 있다. 경제주체가 공간적 뉴프런티어 개척에 나서면서 ‘자원은 유한하다’는 또 하나의 전제가 무너진 것처럼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상품의 공간도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디지털 콘택트 시대가 앞당겨짐에 따라 각국의 시장이 하나로 통합되면서 만성적인 공급과잉 시대가 도래했다. 그 결과 가격파괴 경쟁이 격화되면서 제품의 가치와 괴리 현상이 더 심하게 발생하고 있다. 게임 이론상 제품의 가치에 비해 돈을 적게 번 기업가(투자자)는 ‘쪽박’을 차고, 돈을 적게 지급한 소비자(투자자)는 ‘대박’이 난다.
모든 제품과 주식은 갖고 있는 가치대로 가격과 주가가 형성돼야 기업인에겐 창조적 파괴 정신이 고취되고, 소비자와 투자자들에겐 합리적인 소비행위와 건전한 투자문화가 정착될 수 있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새롭게 다가오는 시장 여건에 맞게 경제주체의 역할이 조정돼야 시장경제가 재탄생될 수 있다. 그 이전까지 가치주와 성장주 간 논쟁은 큰 의미가 없다.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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