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구의원이 재개발 조합장?…선 넘은 공직자 겸직

입력 2021-03-22 17:32   수정 2021-03-30 18:14


현직 구의원 다수가 자신의 지역구 내 주택 재건축·재개발 조합장을 겸직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 구의원은 구청 직원을 불러 정비사업 관련 업무를 지시하거나 문책하기도 했다. 공직자의 땅 투기 의혹이 불거지고 지방의회의 권한이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지방의원의 이해충돌 소지를 막을 법은 내년에나 시행될 예정이다.
“이해충돌 소지 커”
22일 각 구와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조영덕 서울 마포구의회 의장(사진)은 지난 11일 마포 공덕시장 정비사업의 조합장에 당선됐다. 이 사업은 마포구 공덕동 256의 5 일원 공덕시장을 재개발하는 것이다. 2010년부터 추진되다 시공사 선정에 난항을 겪고, 조합원 간 갈등이 불거져 장기간 지연됐다. 조 의장은 2010년(6대), 2018년(8대) 구의원에 당선된 뒤 지난해부터 구의회 의장을 맡고 있다.

본지가 구의회 회의록을 분석한 결과, 조 의장은 구청 직원을 불러 재건축 관련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 그는 2019년 12월 행정건설위원회 회의에서 마포구 지역경제과장에게 “공덕시장에 재개발이 잘 안되다 보니 소방점검이 다 안 돼 불합격을 맞았다”며 “(소방)시설을 하려면 3000만~4000만원이 들어가는데, 구에서 부담해 시설을 하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건설 관련 상임위원회인 행정건설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2013년 1월 회의 때는 “재개발·재건축하는데, 아무리 구에서 전통시장을 활성화한다 할지라도 주민들의 일인데 너무 참견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반발하고 있다. ‘마포구 공직자 부정부패 주민대책위원회(대책위)’는 23일 마포구청 앞에서 조 의장의 조합장 당선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대책위 관계자는 “이해충돌 방지 원칙을 지켜야 할 마포구 선출직 공직자가 구의원이라는 직책을 이용해 부동산 투기를 하는 것에 주민들이 분노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인천에서는 김재동 미추홀구의회 부의장이 주안7구역(주안역 센트레빌) 조합장을 겸임했다. 주안7구역은 김 의원의 선거구인 주안5동에 있다. 이 단지는 1458가구 규모로 오는 7월 입주를 앞두고 있다. 2019년 김보언 부산시 수영구의원은 선거구 안에 있는 남천2구역(삼익빌라) 재건축 조합장을 맡았다. 조 의장은 한국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10년가량 사업이 지연되자 조합원들이 저를 직접 추대해 출마하게 됐고, 60% 찬성을 받아 당선됐다”며 “구의회 의장이라는 직위를 이용해 사적 이익을 추구하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내년부터 조합장 겸직 금지
지방의원의 조합장 겸직을 두고 이해충돌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비사업의 각종 인허가가 구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조합 추진위원회 승인부터 조합설립, 사업시행계획,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구가 결정한다. 서울 강남의 한 재건축 조합장은 “구청 직원이 인허가를 하기 때문에 지역구 국회의원보다 구의원과 가깝게 지내는 일이 더 많다”며 “구의원이 조합에 있으면 사업을 추진하는 데 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동안 이를 막을 법과 규제는 미비했다. 행정안전부는 그간 ‘지방의원의 정비사업 조합장 겸직이 가능하다’고 유권해석을 내려왔다. 대신 조합장인 구의원을 건설분과위원회 등 소관 상임위에 가지 못하도록 했다.

하지만 올해 내에 지방의원이 조합장직을 내려놓지 않을 경우엔 법적으로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지방자치법 개정안에 “지방자치단체장 인가를 받아 설립된 조합의 단체에 지방의원이 겸직할 경우 조합장 직을 사임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어서다. 이 법은 내년 1월 시행된다.

행안부 관계자는 “과거 구의원 등 지방의원은 무보수 명예직으로 시작해 2006년에야 유급제를 도입했기 때문에 지방의원의 겸직은 ‘원칙적 허용, 예외적 금지’를 적용하고 있다”며 “지방의원의 겸직으로 인한 이해상충 논란이 커진 데 따라 내년 시행되는 법에선 겸직 제한 규정을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내년 시행되는 지방자치법 개정안에 따르면 지방의원들은 겸직 신고 내용이 의무적으로 공개된다. 공개 의무나 겸직 관련 규정을 위반할 경우 시 의장이 사임을 권고하는 등 지방의회에서 징계를 받게 된다.

양길성/하수정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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