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투자의 시대는 다시 온다.”
한국을 대표하는 가치투자자인 이채원 전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사장이 지난해 12월 자리에서 물러나며 한 얘기다. 당시 이 전망을 귀담아 듣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성장주가 여전히 득세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최근 3개월 간 국내 가치주 펀드에서 9214억원이 빠져나간 게 이를 잘 보여준다.
찬밥 신세였던 가치주 펀드의 ‘반전 시나리오’가 현실화하고 있다. 가치주 펀드의 연초 이후 수익률이 최근 주식형 펀드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가치주 펀드의 수익률은 20%를 넘었다. 코스피지수가 연초 이후 5% 정도 오르는데 그친 것과 대비된다. 가치주 득세의 배경인 금리 상승 등이 추세적으로 이어질 전망이어서 이같은 흐름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가치주 펀드의 수익률은 최근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가치주 펀드와 국내 주식형 펀드의 최근 1년간 평균 수익률은 각각 82.28%, 106.76%씩으로 국내 주식형 펀드가 한참 앞섰다. 올 연초 이후 수익률도 지난달 초 기준으로는 각각 5.93%, 6.68%였다. 그러나 이달 초에는 연초 이후 수익률이 각각 7.52%, 7.26%씩으로 가치주 펀드가 앞서기 시작했고 이후 점점 격차가 벌어졌다.
펀드별로 보면 한국밸류10년투자어린이 펀드이 연초 이후 수익률이 20.55%로 가장 앞섰다. 이 상품은 ‘어린이가 먼 훗날 어른이 됐을 때를 염두에 두고 장기 투자한다’는 콘셉트로 만들어진 펀드다. 이어 에셋플러스코리아리치투게더 펀드(16.14%), 마이다스액티브가치 펀드(14.89%), 미래에셋TIGER우량가치 상장지수펀드(ETF)(14.47%), 한국밸류10년투자 펀드(14.39%) 등이 뒤를 이었다.
반면 주가수익비율(PER), 주가순자산비율(PBR) 등 단기간에 가시화될 수 있는 이익이 중시되는 가치주의 매력은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최근 유동성 회수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것도 가치주 강세를 부채질하고 있다.
윤정환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매니저는 “작년에는 매출 성장률이 높은 기업의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이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올해에는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잘 나오는 기업으로 증시의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며 “지난달 이후 성장주가 조정을 많이 받았지만 가치투자 포트폴리오는 수익률을 성공적으로 지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치주 펀드가 수익률을 극대화하려면 성장주 평가 기준인 ‘먼 미래의 수익성’을 일정 부분 수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성장주와 가치주의 밸류에이션 괴리가 해소되고 나면 성장주 상승세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은 “최근 단기 실적이 잘 나오는 기업의 투자 매력도가 올라갔을 뿐 장기적으로 성장할 기업의 전망이 훼손된 건 아니다”라며 “플랫폼 비즈니스의 잠재력을 가치투자 철학에 반영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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