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인텔, 승부수 던졌다…22조 투자·파운드리 재진출 [종합]

입력 2021-03-24 08:44   수정 2021-03-24 16:19


전 세계에서 반도체 공급부족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몇 년 간 각종 위기론에 봉착한 세계 최대 종합반도체업체(IDM) 인텔이 승부수를 던졌다.

약 22조6000억원(200억달러)를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주에 2곳의 반도체 공장을 신설하고, 대만 TSMC와 삼성전자가 주도하고 있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로 하면서다. 인텔 주가는 이날 신규 투자가 발표된 뒤 6.3% 급등했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24일 오전 6시(한국시간 기준) 온라인으로 글로벌 미디어 브리핑을 열고 이같은 계획을 담은 'IDM 2.0' 비전을 발표했다. 밥 스완 전 CEO에 이어 지난 2월 취임한 겔싱어 CEO의 첫 공식석상 행사다.

IDM 2.0 비전에 따르면 인텔은 파운드리 사업에 재진출한다. 랜디어 타쿠르 박사가 이끌 인텔의 독립 파운드리 사업부 명칭은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IFS)'로 결정됐다. 과거 인텔은 2016년 파운드리 사업에 진출했다가 2년 만에 철수한 바 있다.

겔싱어 CEO는 "반도체 설계에 집중하는 대신 생산은 외주에 맡기는 반도체 업체들과 협력해 이들이 설계한 반도체를 대신 생산하기도 하겠다"며 "세계 최대 수준의 지적재산(IP)을 고객사에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텔은 패키징 등 연구개발(R&D)에선 IBM과, 설계 분야에선 케이던스,시놉시스 등과 협력을 통해 파운드리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겔싱어 CEO는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는 모바일 장치에 사용되는 스마트폰 등 모바일용 아키텍처 ARM 기술 기반 칩과 자체 아키텍처인 x86 칩 등 다양한 칩을 제조할 것"이라며 "파운드리 고객사로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스프트(MS), 퀄컴, 애플 등을 끌어올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파운드리 시장 1, 2위인 TSMC와 삼성전자의 주요 고객사들이다.

인텔은 이를 위해 미국 애리조나주에 두 개의 반도체 공장을 신설하고 이를 위해 최소 22조6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인텔은 새롭게 건설 예정인 두 개의 팹을 바탕으로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고객사의 요구사항을 충족하고 파운드리 고객을 위한 역량을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인텔은 현재 미국에서 '웨이퍼 팹'이라고 불리는 4개의 공장과 아일랜드, 이스라엘, 중국에 단일 팹을 운영 중에 있다. 여기에 애리조나 반도체 공장 2곳이 가동에 들어가면 미국과 유럽에서 아시아 반도체 대체재로 부상하며 경쟁이 격화할 것으로 분석된다. 겔싱어 CEO는 "현재 대부분 아시아에 집중된 반도체 제조시설을 미국과 유럽에서도 확보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겔싱어 CEO는 "제품 최적화, 납품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해졌다고 판단해 TSMC와 삼성전자, UMC 등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것"이라며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이미 외주를 내주고 있는 외부 파운드리 업체와 협력 강화도 일부 시사했지만, 반도체 업계에선 이번 인텔의 발표가 여러모로 사실상 파운드리 업체 1, 2위인 TSMC와 삼성전자를 겨냥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인텔의 미국 공장신설은 세계 반도체의 파운드리를 장악한 대만반도체 TSMC와 삼성전자를 겨냥한 것"이라고 했다. 대규모 증설을 통한 제조 능력 확장, 파운드리 사업 재진출, 일부 위탁생산이 예상됐던 중앙처리장치(CPU)에 대해선 자체 생산 의지를 밝히는 등 겔싱어 CEO의 로드맵이 '자체 생산' 기조 유지에 방점이 찍혀서다.

현재 인텔은 갖은 위기론에 직면하고 있다. AMD와 같은 신흥 CPU 강자가 등장해 시장점유율을 빼앗고 있고, 애플과 MS 등 주요 대형 고객사가 인텔과 이별을 선언한 후 독자 칩을 개발하는 등 공고했던 반도체 시장에서의 입지가 흔들리는 신호가 다수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텔은 최근 몇 년간 14나노미터(㎚) 칩에서 10나노 칩으로 공정을 전환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TSMC와 삼성전자는 7나노를 넘어 5나노 수준에 도달한 상태다. 이를 의식한 듯 겔싱어 CEO는 이날 "7나노 공정은 잘 준비하고 있다"며 "극자외선(EUV) 기술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ASML과도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인텔의 이번 대규모 생산 증설 발표는 미 정부가 반도체 대란 극복을 위해 다각도로 대책을 마련하는 와중에 이뤄졌다. 앞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달 국내 반도체 제조업체들이 행정부 최우선 사안이라면서 반도체 품귀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미 반도체 생산 확대를 위한 추가 정부 지원, 새로운 정책 등을 검토하기로 했다. CNBC는 미국 정부가 인텔에 세제지원 등의 큰 혜택을 부여할 것으로 전망했다.

배성수 한경닷컴 기자 baeb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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