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수많은 명연주가 애호가들과 만났다. 존 바비롤리와 할레 오케스트라의 연주에는 따스하고 휴머니즘이 배어 있다. 카라얀은 탐미적이고 독자적인 세계를 그린다. 번스타인은 두텁고 낭만적이다. 듣다 보면 파보 베르글룬트, 유카 페카 사라스테나 오스모 벤스케 같은 본고장 북유럽 지휘자들의 음반에 끌린다. 조미료가 덜한 심심한 음식을 찾는 것과 같다.
베르글룬트는 헬싱키 출신으로 핀란드 방송교향악단의 제1바이올린 주자였다. 핀란드 방송교향악단, 영국 본머스 심포니를 지휘한 이후 1975년부터 1979년까지 헬싱키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으로 지휘했다. 베르글룬트는 1970년대 본머스 심포니, 1980년대 헬싱키 필, 1990년대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 등 세 차례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집을 녹음했다. 헬싱키 필과의 두 번째 전집은 영국 오케스트라의 두터운 유화풍 해석과 달리 청량감을 주는 담백함이 특징이다. 격하게 소용돌이치는 부분에서도 민첩하게 움직인다. 서정적인 표현에서는 차가운 물 위에 부는 봄바람 같은 현지인의 기질을 반영한다.
베르글룬트의 리허설은 악명 높았다. 완벽주의를 지향하고 파트마다 악보에 세세한 표시를 했다고 전해진다. 이런 베르글룬트가 인터뷰에서 “시벨리우스를 해석할 때 세부를 완고할 정도로 너무 정확히 표현하려고 하면 작품을 망치게 된다”고 언급했다니 시벨리우스는 어려운 작곡가다. 예테보리 심포니와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집을 남긴 네메 예르비는 파보 베르글룬트를 본받으란 의미로 장남의 이름을 ‘파보’라고 지었다.
류태형 < 음악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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