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3월 18일자 A12면 참조
25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기준 수에즈운하 양방향에서 정체된 선박은 185척에 달한다. 지난 23일 대만의 초대형 컨테이너선 ‘에버기븐’호가 운하 중간을 비스듬하게 가로지른 채 좌초된 영향이다. 영국 해운전문매체 로이드리스트는 이번 사태로 해상 수송이 중단된 물동량을 하루 96억달러(약 10조8820억원)어치로 추산했다. 수에즈운하는 벌크선, 컨테이너선, 일반화물선, 유조선 등이 하루 평균 약 50척씩 오간다. 세계 컨테이너 물동량 기준으로는 약 30% 비중을 담당한다.
수에즈운하 당국은 앞서 이틀간 선박을 예인하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길목이 좁은데 좌초된 선박은 너무 크고 무겁기 때문이다. 에버기븐호는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 중 하나로 길이 400m, 너비 59m 크기다. 수에즈운하에서 가장 좁은 폭 약 300m 구간에서 방향을 잃고 좌초돼 선체 일부가 모래톱에 박혔다. 최근 해운 수요가 급증한 영향으로 적재량을 거의 꽉 채운 것도 예인 작업을 어렵게 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에버기븐호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를 2만2000개 실을 수 있다”며 “한껏 쌓아올린 컨테이너들이 사실상 돛 역할을 해 강풍이 불 때마다 배의 무게중심을 흔들어 예인 작업이 어렵다”고 보도했다.
해운 전문가들은 사태가 닷새 이상 길어지면 세계 물류 혼란이 커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해운전문 정보기업 JOC그룹의 그렉 노울러 유럽담당 에디터는 “수에즈운하가 2~3일만 막혀도 영국과 유럽 내륙 전역에 대한 화물 운송이 지연된다”며 “이미 해운 물류난이 심해지고 있던 와중이라 장기화하면 영향이 더욱 클 것”이라고 했다.
사태가 주말 중 해결되더라도 한동안 여파가 이어질 전망이다. 해운기업 연합인 빔코의 피터 샌드 애널리스트는 “각 선박이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운항 속도 경쟁을 벌이면 주요 항구 일대 병목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해운 요금도 뛸 가능성이 높다. 일부 선박이 아프리카 남부를 둘러 가는 우회 항로를 택할 경우 항해 기간과 연료비가 더 들어서다.
에버기븐호에 수백만 건에 달하는 보험금 청구가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로이터통신은 “납기일을 놓친 선박들이 선박 용선사인 에버그린 등에 보험금을 청구할 것”이라며 “의약품이나 식품 등 변질·파손되기 쉬운 물품에 대한 손실 비용을 내놓으라는 요구도 쏟아질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수에즈 운하당국이 운하 훼손 대가와 예인 비용을 청구할 가능성도 있다. 업계에 따르면 에버기븐호급 선박은 통상 1억~1억4000만달러(약 1130억~1590억원) 규모 보험에 가입돼 있다.
물류망 균열 우려에 원유 가격은 올랐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은 지난 23일 배럴당 57달러 선까지 밀렸지만 이날 장중 60.06달러에 거래됐다.
반도체는 생산 과정에 막대한 양의 물이 필요하다. 이번 조치가 길어지면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대만 기업의 생산 차질이 심화될 전망이다. TSMC, 마이크론테크놀로지 등이 타이중에 생산시설을 두고 있다. TSMC는 “공업용수 상당량을 확보해 당장 생산에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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