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사진)이 국산 완성차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입을 10년 간 금지하는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영세한 중고차 매매업자를 지키겠다는 '착한' 발상이다.
10년 뒤 국내 자동차 시장이 어떻게 변해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전기차로 시장이 재편되면 기존 중고차 시장 역시 변화가 불가피하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시장을 상대로 이런 무모한 법안을 낸 것은 용감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조 의원이 세계 최대 자동차회사인 폭스바겐의 중형 세단 파사트를 타기 때문에 이런 법안을 냈다고는 믿고 싶지 않다.
하나씩 따져보자.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다? 착각한 것 같다. 우선 미국에서는 완성차업체가 매장에서 신차와 함께 중고차도 판매할 수 있다. 5~6년 안팎의 중고차를 대상으로 정밀 성능 점검과 수리를 거친 뒤 무상보증기간을 연장한 ‘인증 중고차(CPO)’를 판매한다. 독일은 완성차업체들이 아예 중고차 전용 브랜드와 전시관을 운영한다. 이들 업체가 판매하는 CPO는 독일 전체 중고차 시장의 20%에 육박한다.
소비자가 피해를 본다? 조 의원은 완성차업체가 시장에 대한 막대한 지배력을 이용해 중장기적으로 소비자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우선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국내 신차 시장을 리드하고 있는 지금 소비자가 무슨 피해를 입고 있는지 궁금하다. 눈이 높은 소비자는 이미 수입차로 옮겨 타고 있다.
중고차 거래자가 원하는 것은 하나다. 품질이 좋은 내 중고차는 비싸게 팔고, 믿을 수 있는 남의 중고차는 합리적 가격에 사는 것이다. 완성차업체의 시장 진입이 필요한 이유다.
반면 현대차·기아 등 국산 완성차업체는 구경만 하고 있다. 대기업이라는 이유로 정부가 중고차 판매업 진출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중고차 판매업은 2013년과 2016년 두 차례에 걸쳐 각각 3년씩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됐다. 2019년 2월 기한이 끝났지만, 정부는 이번엔 ‘생계형 적합업종’ 제도를 내세워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입을 제한하고 있다.<h2>동반성장위원회는 2019년 11월 ‘중고차 판매업이 생계형 적합업종에 일부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견서를 중소벤처기업부에 냈다. 중기부는 관련 법에 따라 지난해 5월까지 심의위원회를 열어야 하는데도 시한을 10개월가량 넘긴 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중기부 내부에서도 “심의위를 열 경우 대기업의 중고차 판매업을 더 이상 막기 어려울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규제를 지속할 명분을 찾지 못하자 아예 절차를 지연시키고 있다는 얘기다.</h2>
반면 완성차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입 제한이 없는 미국에서는 한국 브랜드와 외국 브랜드의 중고차 감가율이 거의 차이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2017년식 아반떼의 평균 감가율은 34.8%로, 경쟁차종인 폭스바겐 제타(34.8%)와 같았다. 2017년식 쏘나타(43.3%)와 폭스바겐 파사트(43.9%)도 비슷했다.
여기서 등장하는 파사트는 조 의원이 타는 차다. 최근 공개된 국회의원 정기재산변동신고에 따르면 조 의원은 2012년식 파사트를 갖고 있다. 국산차 대비 감가율이 낮은 차량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고, 조 의원이 중고차 매매업자의 표를 얻어 10년 더 국회의원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10년 뒤 변한 시대에 대해 책임질 지도 의문이다. 조 의원이 몸담고 있는 정당의 이름이 '시대전환'이라면 시대 전환에 맞는 법안을 내길 바란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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