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 "정치권, 지지세력 아닌 미래 위해 무슨 일 했나"

입력 2021-03-26 17:34   수정 2021-03-27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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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하는 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오늘 한 많은 일 중 지지세력이 아닌, 미래를 위한 일은 무엇이 있습니까.”

박용만 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7년8개월의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미스터 쓴소리’의 면모를 보였다. 그는 새로운 산업을 가로막는 규제에 답답해했고, 변화를 거부하는 정치권에 울분을 토했다. 박 전 회장이 대한상의 회장직을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 넘겨준 지난 24일 서울 장충단로 두산타워에 있는 집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최근 청년들에게 미안하다고 자주 말씀하십니다.

“젊은 창업자들이 무력감을 많이 느낍니다. 뭔가를 해보려는데 규제 때문에 시작조차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거든요. 잘못된 일을 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왜 기존 법과 제도에 막혀 포기해야 하는지 납득을 못합니다.”

▷규제를 풀기 위해 스타트업 대표들과 국회를 찾아간 적도 있습니다.

“너무 답답합니다. 신산업을 위한 법은 온갖 이유로 통과되지 않고, 심지어 여야 이견이 없다면서도 2년 넘게 묵히는 일이 허다합니다.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 개정안)도 얼마나 오래 끌었습니까.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처리해야 할 법이 수두룩합니다.”

규제에 관한 대화가 이어질수록 박 전 회장의 목소리는 커졌다. 그는 신산업 규제를 풀어달라며 임기 중 수시로 국회를 드나들었다. 데이터 3법 처리가 지연될 당시 “너무 답답해 벽에 머리를 박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왜 이렇게 바뀌지 않을까요.

“정치가 바뀌지 않으니까요. 규제의 근거가 되는 건 법인데, 그 법을 정치가 만듭니다. 정치인들에게 호소하고 싶어요. 자신을 지지하는 집단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할 때도 있지만,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한 노력도 함께해달라고 말입니다.”

▷지금 한국 경제는 어떤 상황이라고 판단합니까.

“코로나19 충격을 버티는 건 잘했다고 봅니다. 문제는 미래 경제에 대해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인공지능(AI)이니 빅데이터니 미래에 대한 전망은 쏟아지는데, 그 변화를 어떻게 수용할지 정책적 준비에 너무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무엇을 준비해야 합니까.

“기업들이 새로운 변화에 대응하고, 이를 토대로 성장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제일 간단한 방법은 가급적 기업을 건드리지 않는 것입니다. 시장에 맡기고, 더 자유롭게 해야지 자꾸 손발을 묶으면 안 됩니다. 변화를 따라갈 수 없어요. 포지티브 규제(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일부만 허용)에서 네거티브 규제(원칙적으로 허용하고 일부만 금지) 방식으로 바꾸는 게 최우선입니다.”

▷규제는 더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이대로 가면 우리 사회가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의 규제가 계속되면 기업들은 허덕일 테고, 산업은 아예 성장할 수 없을 것으로 봅니다. 동시에 행정도 늘어나는 규제를 감당하지 못하겠죠. 행정이 비대해지고 비효율적으로 바뀌다가 결국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올 것으로 예상합니다.”

박 전 회장은 1시간 가까이 규제에 대해 말한 뒤에야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그의 답변은 거침없었다. “대한상의 회장을 할 때는 아무래도 발언을 조심해야 했는데, 이제는 더 편하게 말할 수 있다”며 웃기도 했다.

▷최근 상속세를 두고 여러 의견이 나옵니다.

“자식에게 부를 물려주고 싶은 욕구를 인정해야 합니다. 많은 부모는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자식에게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합니다. 이를 무조건 막는 게 과연 옳을까요. 무조건 막으니 사회적으로 존경받던 분들까지 편법을 쓰는 일이 생겼습니다.”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부를 자식에게 넘길 수 있는 길을 열어주되 그 이상으로 국가와 사회에 공헌하도록 해야죠. 공헌할 기회를 주고, 공헌하면 부를 넘겨주는 걸 인정하자는 뜻입니다. 소득세율을 높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고요. 물론 사회안전망과 교육 등을 통해 계층 간 격차를 줄여야겠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선처해달라는 탄원서도 냈습니다.

“이 부회장이 재판정에 서고, 처벌받고 있는 건 삼성의 상징성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선처를 호소했습니다. 한국 기업인을 대표해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 셈인데, 그렇다면 기업인들이 함께 부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삼성이 잘못한 게 있다면 그 잘못을 가장 잘 바꿀 수 있는 사람도 이 부회장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 부회장이 삼성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면 국가 전체를 봤을 때 이익 아닙니까.”

▷최근 발간한 책 《그늘까지도 인생이니까》가 화제입니다.

“한 달 만에 3쇄까지 갔으니 괜찮은 편이죠. 베스트셀러보다 스테디셀러가 되면 좋겠습니다. 공감한다는 분이 많다고 하니 감사합니다. 다만 대기업 회장이 쓴 책이 아니라 박용만이라는 사람이 저자로 데뷔하는 책으로 봐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

“아직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두산인프라코어 회장, 대한상의 회장처럼 이름 뒤에 수식어가 붙는 삶을 살았는데 이제 그냥 박용만으로 살고 싶어요. 경영도 충분히 했고, 공적인 일도 할 만큼 했습니다. 이름과 전화번호만 쓰여 있는 명함을 만들려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도병욱/이수빈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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