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사모펀드 사태와 신뢰산업의 위기

입력 2021-03-28 17:03   수정 2021-03-29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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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중반 골드만삭스는 ‘백만장자의 보이스카우트’로 불렸다. 언제나 고객을 위해 옳은 일을 한다는 의미였다. 당시 미국에 적대적 인수합병(M&A) 열풍이 몰아쳤다. 금융회사들은 돈 되는 곳으로 달려들었다. M&A 대상 회사를 물색하고, 공격하는 것을 도와줬다. 골드만삭스 경영진은 적대적 인수를 돕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인수당하는 회사도 고객이며, 고객을 해하는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취지였다. 적대적 인수의 대상이 된 기업들이 골드만삭스를 찾기 시작했다. 방어자문을 하면서 골드만삭스는 새로운 성장 기반을 닦았다. 이 스토리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신뢰’다.

물론 오래전 얘기다. 골드만삭스도 변했다. 하지만 금융산업에 대한 ‘업의 본질’을 말할 때마다 이 얘기를 떠올린다.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도 생전 “금융업의 본질은 신뢰산업”이라고 했다.
신뢰에서 사기로
라임펀드와 옵티머스펀드 등 수십조원에 이르는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에 대한 처리가 마무리되고 있다. 펀드를 운용한 운용사, 펀드를 판매한 증권사와 은행, 펀드에 들어 있는 자산을 관리하는 수탁사(은행) 등에 책임을 묻는 절차다. 이런 책임과 별도로 사모펀드 산업은 신뢰 상실이라는 치명적 타격을 받았다. 당분간 재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만큼 타격이 전방위적이고 상호적이다.

사기 주범인 운용사는 모든 주체로부터 신뢰를 잃었다. 우선 판매사와의 신뢰가 무너졌다. 아무리 좋은 상품을 만들어가도 증권사와 은행은 과거처럼 팔 수 없다. 펀드 운용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알 방법이 없다는 것을 판매사들은 깨달았다. 수탁사와의 신뢰도 깨졌다. 사모펀드 수탁 업무를 맡은 은행들은 쥐꼬리만 한 수수료를 챙기려고 운용사가 요구하는 대로 해주다가 이런 꼴을 당했다. 물론 수탁사인 은행의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운용사가 서류와 다른 채권을 사달라고 했을 때 “제안서와는 다른데요”라고 말 한마디 못했다. 사달라는 대로 쓰레기 채권을 사준 것은 신뢰산업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행위였다. 소비자와 판매사 간 신뢰는 말할 것도 없다. 소비자들은 증권사와 은행을 믿고 펀드에 가입했다며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금융당국의 무책임
사모펀드 사태에서 신뢰산업의 중심을 잡아야 할 주체가 있었다. 정책입안, 감독권을 모두 갖고 있는 금융당국이다. 하지만 그들은 사기와 부실 판매가 진행되는 동안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았다. 사고가 터지자 잇따라 100% 배상 결정을 내리고 있다. 참 쉬운 결정이다. 큰소리가 나지 않게 할 수 있다. 라임처럼 운용사와 판매사가 짜고 사기펀드를 판매한 것은 100% 보상이 맞다. 이외의 펀드들은 상황이 좀 다르다. 이런 사건을 모두 100% 보상해주라고 하면 ‘투자자의 자기책임’이라는 원칙은 설 땅을 잃는다.

또 실행 가능성은 다른 문제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들은 말한다. “판매사가 먼저 배상해주고, 수탁사 등과 책임을 사후에 다퉈라.” 하지만 판매사는 그 결정을 내릴 수 없다. 이사회 설득이 불가능하다. 판매사와 수탁사 등의 책임 여부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먼저 배상해주고, 소송을 하면 배임 책임을 뒤집어쓸 수 있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게 우선이지만, 문제가 터졌을 때 최선의 해법을 모색하는 것도 금융당국의 역할이다. 일단 문제가 된 곳을 규제하고, 복잡한 사고 처리는 ‘너희들끼리 알아서 하라’는 식의 쉽고 무책임한 결정은 금융시장이 신뢰를 되찾는 데 또 다른 걸림돌이 될 수 있다.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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