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 '갑질 딱지' 붙이면 이겨"…재판보다 여론전 원하는 의뢰인들

입력 2021-03-28 17:22   수정 2021-03-29 00:21

“변호사님, 아는 기자 있으시죠?”

서울 서초동에서 중소형 로펌을 운영하는 A변호사는 최근 법률상담 중 이 같은 질문을 자주 받아 난감하다. 의뢰인들이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한 법률적 대응보다 여론전을 우선 요구해서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기업 간 특허 분쟁, 브랜드 등 상표권 분쟁, 연예인·운동선수 등이 연루된 사건 소송 과정에서 법원 밖 여론몰이로 소송 상대방을 흠집내고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여론전이 심화되고 있다.

한 대기업의 법률대리를 맡고 있는 B변호사는 “중소기업이 법적 분쟁을 홍보 수단으로 삼는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모 중소기업이 특허 문제와 관련해 대기업에 경고 성격의 내용증명을 보내면서 ‘기술탈취’ 등을 주장하는 언론사 보도를 무기로 협상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용증명을 보낸 상대 변호사가 보도에서 객관적인 전문가로 둔갑해 해당 기업에 유리한 내용만 전달했다”고 하소연했다. 해당 중소기업은 국내외 대기업을 상대로 수차례 민·형사 소송을 제기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특허 침해금지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고 고소 사건이 무혐의 종결되는 등 결과는 좋지 않았다. B씨는 “원고 측 기업은 비록 소송에선 졌지만 결과와 상관없이 해당 대기업에 ‘갑질’ 꼬리표를 붙이고, ‘대기업과 소송전을 벌일 만큼 우리 기술력이 인정받았다’며 홍보에 활용했다”고 주장했다.

특허 전문 변호사 C씨는 “기업들이 새로운 상표 출원을 위해 이미 등록된 개인들의 상표권 사용 현황 등을 살펴보는 특허심판원 절차를 밟는 경우가 있다”며 “이런 때에도 대기업이 상표를 빼앗으려 한다는 ‘프레임’으로 관련 소송을 취하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법조계 관계자 D씨는 “대기업과 연예인, 유명 스포츠 선수들은 여론화의 부담 때문에 정상적인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기도 한다”며 “부동산 임대차 등 이들이 연루된 각종 계약에선 상대방이 법률적 문제보다 여론전을 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법조계 일각에선 SNS와 언론 보도 등을 악용하는 일부 의뢰인의 문제이며, 자신의 억울한 상황을 공론화하려는 시도까지 위축돼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초동 법조타운의 한 변호사는 “1인 시위를 하고 싶은데 법적 문제점이 없는지 검토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며 “대규모 분양사기, 의료사고 등 ‘다윗과 골리앗’ 싸움에서 어떻게든 목소리를 내려는 약자들의 경우와는 구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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