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에서 플랜트 기자재 업체를 운영하는 A사장은 지난해 5~6년차 엔지니어 두 명을 회사에서 내보냈다. 두 직원 모두 동종업계의 한 대기업에서 경력직 입사를 제안받고 사표를 냈기 때문이다. 이 업체가 두 직원의 업무 숙련도를 높이는 데 투자한 금액은 수억원에 달했다. 그는 “열불이 나지만 이직을 결심한 직원이 찾아와 제발 놓아달라고 읍소하는 바람에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로 인해 중기업계 인력난이 심해지면서 벼랑 끝에 내몰리는 중소기업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경기 화성의 한 엔지니어링업체 대표는 “대기업 블랙홀 현상이 심해질수록 중소기업의 부담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주 52시간 근로제로 가뜩이나 생산 현장의 인력이 부족해진 판에 상황이 더 악화될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엔지니어링 회사 대표는 “몸값이 높아진 15~20년차 이상 직원들을 관리하는 게 회사 경영의 최대 이슈가 됐다”며 “직원들을 붙잡으려면 임금을 올려줄 수밖에 없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반월공단의 한 제조업체 사장은 “원청 대기업에 밉보일까봐 대놓고 불만을 드러낼 수도 없는 처지”라고 하소연했다.
실제 통계청이 지난달 발표한 ‘2019년 임금근로일자리 소득 결과’에 따르면 대기업 근로자의 월평균 세전소득은 515만원이다. 중소기업 근로자의 세전소득은 245만원으로 대·중소기업 간 월평균 소득이 270만원 정도 차이를 보였다. 대·중소기업 월평균 소득은 전년 대비 각각 2.9%, 6.1% 증가했지만 1년 전과 마찬가지로 중소기업 근로자의 월평균 소득이 대기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는 기업이 벌어들이는 수익 차이가 그만큼 크기 때문에 나타난다. 2019년 전체 기업이 벌어들인 영업이익의 56.8%(125조원)는 기업 수의 0.3%를 차지하는 대기업이 가져간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전체 기업의 99.1%인 중소기업의 영업이익은 56조원으로 전체 영업이익의 25.5%에 머물렀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임금 격차가 벌어지면서 사회적 위화감이 조성되고 계층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며 “대기업이 임금 인상을 자제하면서 협력 중소기업에 적정 이윤을 보장해주는 등 대·중소기업 간 상생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