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러려고 공무원 됐나 싶다"…공직사회 '부글부글'

입력 2021-03-29 15:14   수정 2021-03-29 18:28


"하려면 하겠지만 자괴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네요."

경제부처에 근무하는 A사무관은 29일 "모든 공직자에게 재산 등록 의무를 부과하겠다"는 정부 발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나는 다주택자도 아니고 부동산 업무에도 관여하지 않아 재산 등록을 해도 두려울 게 없다"면서도 "박봉 받으면서 밤낮 없이 일하는데 돌아오는 건 잠재적 범죄자 취급이어서 '내가 이러려고 공무원 했나' 싶다"고 토로했다.
"반복되는 공무원 대상 화풀이에 지쳐"
공직자 재산등록제 확대 대책을 두고 일선 공무원들의 불만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다. 이 방침은 현재 4급 이상 공무원 등 23만명이 대상인 재산등록제를 직급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공무원, 공공기관 직원에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19일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이 운을 띄웠고 문재인 대통령이 추진을 공식화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재산등록제를 모든 공직자로 확대해 처음 임명 이후 재산 변동 사항과 재산 형성 과정을 상시적으로 점검 받는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 방안대로면 재산등록제 대상은 160만명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공직자에게는 새로 부동산을 거래할 때마다 신고하게 하는 의무도 부과된다.

대다수 공무원들은 방침 그 자체보다는 문제가 터질 때마다 반복되는 공무원 '적폐 몰이'에 대한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중앙부처의 한 공무원은 "작년 7월 집값이 급등해 부동산 정책 실패 논란이 커지자 '고위공무원은 모두 한 채만 빼고 집을 처분하라'고 불호령을 내리고, 작년 11월 코로나19가 재확산하자 '공무원은 코로나 걸리면 문책하겠다'고 겁박하더라"며 "탈(脫)원전 정책을 성실히 수행한 산업통상자원부 실무자가 구속된 것도 공직 사회에선 적잖은 충격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재산등록제 확대 방침까지 나오자 더는 못 참겠다는 목소리들이 나온다"며 "정권 차원의 실패를 하위 공무원들에게 '화풀이'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선거에 이용하려는 수작 아니냐"
선거에 공무원들을 이용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지난 23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보권선거를 앞둔 여당이 부동산 개발을 담당한 일부 공직자의 일탈 행위의 책임을 전체 공무원에게 전가하는 식으로 비난 여론을 무마하려는 수작"이라고 날을 세웠다.

'모든 공직자에게 재산등록 의무 부과'는 여당의 작품으로 알려졌다. 기획재정부·국무총리실 등은 '부동산 정책 관련 업무를 보는 공직자'까지만 대상을 확대하려 했으나 여당이 "그걸로는 부족하다"며 100% 적용으로 넓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국회의원, 시·도의원 등 입법부는 새로 부동산을 취득할 때마다 신고하게 하는 대책 적용 대상에 쏙 빠졌다. 이에 대한 불만도 많다. 중앙부처의 한 사무관은 "한 명 한 명이 장관급인 국회의원이 부처 주무관보다 부동산을 포함한 정책 정보 접근성이 훨씬 높지 않냐"며 "지금 국회의원, 시·도 의원 투기 의혹도 속속 터져나오는데 왜 의원은 규제 무풍지대냐"고 지적했다.
차명거래는 못막아 실효성에도 의문
대책의 실효성에 대한 문제 제기도 나왔다. 경제부처의 한 관계자는 "LH사태의 본질은 정부 내부의 개발 관련 미공개 정보를 부당하게 활용했다는 것"이라며 "정보 유출에 대한 집중적인 수사와 이를 막을 근본적인 대책이 중요한데 하위 공무원 재산등록이란 엉뚱한 답을 내놓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재산등록제로도 친인척, 제3자를 통한 차명 거래는 막을 수 없어 그 자체로 한계도 많다"고 덧붙였다.

제도가 악용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 공공기관 직원은 "부동산 정책과 상관 없는 하급 직원이 우연히 개발 지역에서 부동산 거래를 했다가 '불법 투기'로 몰리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며 "모든 공직자는 그냥 부동산 거래를 하지 말라는 말로도 들린다"고 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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