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이 처음부터 ‘중공업 명가’로 불린 것은 아니었다. 소비재 기업이었던 두산은 외환위기 직전인 1990년대 OB맥주, 처음처럼, 코카콜라(판매권)을 매각했다. 이후 한국중공업(두산중공업)과 대우종합기계(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하며 중공업으로 재편했다.
전환은 성공적이었다. 2000년대 중동 플랜트 시장 초호황과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경기부양으로 세계 500대 기업(2011년)에 오르기도 했다. 2012년초 두산중공업 주가는 현재보다 5배 높은 6만원, 두산인프라코어는 3배높은 3만원대에 거래됐다.
영광은 길지 않았다. 두산건설에 대한 무리한지원, 무리한 인수합병(M&A), 탈석탄·탈원전으로 인한 플랜트 수주 감소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급기야 계열사들은 물론 동대문 두산타워까지 팔아야할 정도로 회사가 어려워졌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글로벌 건설경기 호황, 분할·합병 효과, 신재생에너지 업체로의 전환에 힘입어 주가가 회복하고 있다. 두산 핵심 계열사로 불리는 두산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 두산밥캡의 랠리가 신호탄이란 분석이다.
세 업체가 급등한 이유는 개별 호재와 업황 회복이 겹친 결과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인프라 투자를 기존 2조달러 수준에서 3조달러로 확대한 점이 훈풍이 됐다. 동시에 두산인프라코어의 분할합병에 따른 주가 상승 가능성이 호재로 작용했다.
두산그룹은 지난 19일 두산인프라코어를 투자부문(신설법인)과 사업부문(존속법인)으로 분할해, 사업부문을 현대중공업그룹에 매각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투자부문과 사업부문의 분할비율은 0.6985대 0.31.04다. 분할된 투자부문은 두산중공업과 합병한다.
투자부문에는 두산밥캣 지분 51.05%가 포함된다. 손자회사였던 두산밥캣이 두산중공업 자회사로 들어간다. 사업부문은 순수 건설장비 회사로서 현대중공업그룹에 편입된다. 두산인프라코어 주주들은 영업부문 주식과 함께 두산중공업 0.47주를 추가로 지급받는다.
기존 주주 입장에서 두산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 주식을 모두 소유하게 되는 점이 호재로 꼽힌다. 사업 회사의 경우 현대중공업그룹 편입 이후 주가 재평가도 기대되고 있다. 하이투자증권은 현재 5배 수준인 주가수익비율(PER)이 12배 수준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특히 반대매수 청구권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점을 투자자들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영수 삼성증권 연구원은 “반대매수 청구권이 쏟아지면 분할 자체가 무산될 수 있기 때문에 회사 입장에서 주가를 부양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형성됐다”고 했다.
인프라 투자에 힘입어 실적도 증가할 전망이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두산밥캣의 올해 영업이익은 4644억원으로 작년 대비 17.9%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에는 영업이익이 5120억원으로 확대되며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두산중공업의 플랫트 부문이 회복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오고 있다. 2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은 내부 보고서에서 원자력을 그린 에너지로 간주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사양산업으로 간주됐던 원자력 사업의 가치가 부각될 수 있는 것이다.
두산중공업은 풍력, 수소 등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두산중공업은 창원 본사에 풍력2공장을 준공하는 등 사업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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