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위원 칼럼] 노동 규제 폭주에 커지는 '무력감'

입력 2021-03-29 17:14   수정 2021-03-30 00:07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산재 사고 시 사업주 처벌 강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 현 정부가 출범한 2017년 이후 노동 규제는 줄줄이 강화됐다. 굵직한 규제가 아니더라도 국회만 열리면 노동 관련 규제법안이 속속 통과됐다. 이제 어지간한 법안은 뉴스거리도 안 된다.

지난 24일 국회 본회의도 마찬가지였다. 근로기준법, 고용·산재보험료징수법,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처리됐다. 기업이나 사업주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핵심은 과태료 신설이다.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해 1000만원의 과태료 규정이 신설됐다.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인 경우 회사에서 적정한 조치를 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직장 내 괴롭힘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는 경우에도 5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국회만 열리면 노동 규제 봇물
하청업체에서 산재 사고가 나도 원청회사 산재보험료에 반영되도록 고용·산재보험료 징수법도 개정됐다. 고객의 폭언 등으로부터 보호 조치를 강구해야 할 대상이 ‘고객 응대’ 근로자에서 ‘일반’ 근로자로 확대되는 내용은 산업안전보건법에 담겼다.

근로자 보호라는 필요성이 인정되지만 경영계는 지나치게 급작스러운 변화로 받아들이고 있다. 회사 내 관련 규정과 지침을 바꿔야 하고 준법 감시 절차도 시급히 손봐야 한다.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법안이 공포된 뒤 20일이면 바로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노동 관련 규제 강화는 정부·여당 때문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도 정부·여당의 정책, 입법 기조를 견제하기보다는 오히려 동조하기 때문이다. 근로시간 단축부터 그랬다. 2018년 2월 주 52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를 금지하는 초강력 법안이 불과 4개월의 시행 준비 기간만 둔 채 국회를 통과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여야 만장일치’ 합의가 있었다.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은 2017년 대선때 주요 정당 후보의 공통된 공약이었다.

‘규제는 달성하려는 목적과 비교해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일반론은 둘째 치더라도 이해당사자의 의견 반영은 필수다. 정부 내 규제 심사는 형식에 그치기 일쑤고 국회의 법안 심의 과정에서 기업의 목소리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하소연이 쏟아진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대표적이다. 노동계 출신 의원이 다수를 차지하는 가운데 경영계 목소리는 들을 기회가 없다.
기업 "호소해도 반영 안돼" 체념
이해 대변은커녕 기업 몰아세우기는 점점 강도를 더해간다. 산재 예방 ‘정책’을 다루겠다며 지난달 22일 환노위는 사상 최초로 산재 청문회를 열었지만, 기업인 망신 주기로 일관했다. 여야가 따로 없었다. 국민의힘 소속 한 의원은 최정우 포스코 회장을 ‘보험사기꾼’에 비유하기까지 했다. 최 회장이 허리 지병을 이유로 불출석 사유서를 낸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이후 한술 더 떠 ‘포스코가 국회에 허리를 숙이지 않는다’며 환노위가 다음달 현장시찰을 추진한다는 얘기가 환노위 주변에서 흘러나온다.

기업으로선 하소연할 엄두도 못 낸다. 대형 법무법인의 한 노동법 전문 변호사는 이런 상황을 ‘무기력증’으로 설명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일방 처리, ‘타다’의 승차 공유 서비스 금지, 원청을 상대로 한 하청 노조의 교섭 요구 등 산업계 전반에 회오리바람이 몰아치지만, 아무리 외쳐봐야 달라질 게 없다는 학습효과만 커졌다”는 하소연이다. 노동 규제 법안이 무더기로 통과된 24일에도 경영계에선 아무런 코멘트가 없었다.

js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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