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이어 오스카의 영광을 재현할 것이란 기대가 높아지면서 아카데미에 대한 관심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미나리’의 쟁쟁한 경쟁작들이 국내에서 차례로 개봉해 더욱 관심을 모은다. 인생을 관통하는 강렬한 메시지와 앤서니 홉킨스 등 베테랑 배우들의 농익은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다음달 7일 국내에 개봉하는 ‘더 파더’는 오스카의 작품상과 주요 연기상을 두고 ‘미나리’와 치열한 경쟁을 펼친다. ‘미나리’에 출연한 한국계 미국인 배우 스티븐 연은 남우주연상을 두고 ‘더 파더’의 홉킨스와 경쟁한다.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라 한국 배우 최초로 연기상에 도전하는 윤여정도 ‘더 파더’의 올리비아 콜먼과 겨룬다. 외신에선 두 사람을 가장 강력한 여우조연상 후보로 꼽고 있다.
홉킨스는 다채롭고 격정적인 연기로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을 압도한다. 홉킨스는 자신과 이름이 같은 노인 앤서니 역을 맡았다. 완벽한 일상을 보내던 앤서니는 기억이 점차 흐려지고 익숙했던 주변이 낯설게 느껴진다. 홉킨스는 장난기 가득하고 천진난만한 할아버지의 모습부터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당황하고 분노하는 모습까지 입체감 있는 연기를 선보인다. 특히 앤서니가 우는 장면은 홉킨스 연기의 정점을 보여준다. 콜먼은 아버지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듯하면서도 속을 알 수 없는 이중적인 느낌의 딸 앤 역을 섬세하게 연기했다.
반복과 변주를 활용한 독특한 작품 구성도 눈여겨봐야 한다. 동일한 장면이 각자 다른 인물들에 의해 반복되는 설정은 앤서니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동시에 관객들의 몰입감을 극대화한다. 치매 환자와 주변 인물의 심리를 정교하게 다뤄내 많은 공감도 자아낸다. 연출은 ‘플로리다’의 각본 등을 쓴 플로리안 젤러 감독이 맡았다.
오스카 작품상 유력 후보로 꼽히는 ‘노매드랜드’도 다음달 15일 개봉한다. 지난 2월 열린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은 영화다. 연출을 맡은 중국계 미국인 클로이 자오 감독은 아시아 여성 최초로 골든글로브 감독상을 차지했다. 영화는 도시가 붕괴된 뒤 낯선 세상으로 떠나는 여성 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펀은 광활한 자연과 길 위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며 새로운 삶의 여정을 시작한다. ‘쓰리 빌보드’ 등으로 국내 영화 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펀을 연기한다. 맥도먼드는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 후보에 오른 ‘피부를 판 남자’도 올 상반기 개봉한다. 이 작품은 자유를 되찾기 위해 예술가 소라야에게 피부를 판 남자 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샘은 등에 비자(VISA) 타투를 새기고 ‘살아있는 예술품’으로 전시된다. 실제 벨기에의 예술가 빔 델보예가 한 남자의 등에 타투를 작업해 미술관에 전시하고, 그가 죽은 뒤 피부를 액자에 보관하는 조건으로 계약한 사건에 영감을 받아 제작한 영화다. 샘을 연기한 야하 마야니는 이 작품으로 베니스영화제에서 오리종티 최우수 연기상을 받았다. 소라야 역은 모니카 벨루치가 연기했다. 튀니지 출신 여성 감독 카우테르 벤 하니아가 연출을 맡았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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