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탑동은 1990년대까지 번화가였다. 영화관과 술집, 모텔이 즐비했다. 2000년 이후 상권이 옮겨가며 쓸쓸한 옛 모습만 간직한 채 버려졌다.
탑동의 풍경은 요즘 완전히 달라졌다. 제주에서 가장 붐비는 곳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제주를 찾는 20~30대가 가장 먼저 들르는 명소가 됐다. 제주 공항에서 차로 15분. 아라리오뮤지엄은 2014년부터 미술관 세 곳과 레스토랑, 아트 호텔을 차례로 선보이며 ‘아라리오 로드’를 완성했다.
폐업한 극장과 먼지 낀 모텔은 동네 재생의 핵심 재료가 됐다. 그중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는 곳은 약 1년 전 문 연 ‘디앤디파트먼트(D&Department·디앤디)’다.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이자 레스토랑, 호텔을 겸하고 있는 이곳은 의외의 장소에서, 취향을 공유하고, 사람들을 공부하게 하는 공간으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
디앤디는 일본 디자인그룹으로 2000년 도쿄에서 처음 시작했다. 그래픽 디자이너인 창업자 나가오카 겐메이는 일본 거품 경제가 꺼진 1990년대 후반 재활용품점이 급증하는 걸 보고 ‘물건 하나로 대를 물려주는 것은 더 이상 어려워지겠다’고 생각했다. 쓸 만한 가치가 있는 제품을 선별해 다듬고, 주말마다 자신의 집을 개방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판매했다. 이를 매장으로 확장한 게 디앤디다. 일본을 넘어 한국과 중국 등에 11개 지점이 있다. 그중 숙박 시설을 접목한 건 디앤디 제주가 처음이다. 김창일 아라리오 회장과 손잡은 결과다.
이 공간에서 사람들은 공부한다. 호텔방의 모든 가구와 소품은 재활용품이다. 귤을 담았던 박스, 사무실에서 쓰던 철제 캐비닛 등이 가구로 활용된다. 하지만 지저분하거나 낯설지 않다. 총 13개의 방에서는 최소한의 것들로 최대의 지적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13개의 방에 묵는 사람들은 거실에서 아침밥을 나누고, 밤에는 함께 음악을 듣는다. 호텔이지만 오래 알던 친구의 집에서 하룻밤 머무는 듯한 느낌을 전한다.
재생 공간과 재활용품만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건 아니다. 이곳에선 사면서 배우고, 먹으면서 배운다. 1층은 식당, 2층은 편집숍, 3층은 게스트하우스의 단순한 구조지만 단 한 곳도 허투루 기획된 곳이 없다.
이 외에도 1962년 일본 가리모쿠에서 탄생한 K체어, 1932년 버스 좌석을 만드는 공장으로 시작해 육아용품 회사가 된 스토케의 트립트랩 등을 자세히 ‘공부’할 수 있다. 타월 하나, 무심코 놓인 전등 하나에도 다 사연이 있다. 70년간 때타월을 생산한 송월타월의 이야기, 60년간 국가대표 스테이플러와 사무용품을 제조해온 피스코리아가 공간의 주인공.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그동안 내가 익숙했던 것들’에 대해 다시 본다. 그리고 깨닫는다. ‘물건에 손때가 묻으면 더 멋있어진다’는 것을.
‘d식당’도 마찬가지다. 이탈리안 셰프인 조주형 셰프가 제주산 식재료를 연구해 밥상을 마련한다. 감귤로 죽을 쑤어 고추장과 배합한 감귤고추장, 제주 토종콩으로 빚은 푸른콩된장 등이 주재료다. 사회와 지역과 나, 그리고 비즈니스를 연결하는 디앤디의 철학은 좋은 위치에서 막연하게 찾아오는 사람들을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불편한 위치에 있더라도 일부러 가게의 물건을 보러 찾아오는 사람들을 기다린다. 지역의 장인, 지역의 오래된 문화와 유산을 알리고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한다.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시대를 지나 백화점식 오프라인 유통이 세계적 위기를 맞이한 순간, 디앤디라는 공간은 취향이 곧 돈이 되는 ‘감각자본의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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