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로케 멈춘 광고…'기술'이 파도쳤다

입력 2021-03-29 17:41   수정 2021-04-06 18:35


해외 로케이션은 광고 촬영의 소금 같은 존재였다. 신차가 흙먼지를 휘날리며 광활한 평야를 질주하는 장면, 아웃도어 의류를 입은 모델들이 쭉 뻗은 산맥을 트레킹하는 장면은 해외에서 찍어야 ‘제맛’이 난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제품을 세련되게 선보일 배경을 찾는 것은 광고제작자들의 주된 임무였다.

코로나19 사태가 모든 것을 멈췄다. 감염병이 퍼지자 세계 각국은 문을 걸어잠갔다. 해외 출장을 가면 한 달간 자가격리를 감수해야 한다. 광고업계가 선택한 대안은 ‘기술’이다. 유튜브는 물론 가상현실(VR), 원격 촬영 등을 총동원해 새로운 광고를 만들기 시작했다.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는 평가가 나온다.
모델에 영상 비춰 배경으로
흰 꽃을 높이 들고 선 히피 스타일의 모델 뒤로 총을 든 흑백의 군인들이 지나간다. 밀려오는 푸른 파도 위를 거북이가 기어간다. ‘정신은 영원히 시들지 않는다’는 광고 문구 사이로 훈민정음과 투표하는 여성의 그림, 마스크를 쓴 의료진이 지나간다. 이노션이 지난 1월 말 공개한 기아의 ‘모하비 브랜드 필름’은 1분 길이 영상에 배경만 15개가량 나온다. 그러나 모든 장면은 한 세트장에서 촬영됐다. 실제 배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노션은 해외 촬영을 대신하기 위해 전시회 등 예술 작업에서 주로 사용하는 ‘프로젝션 매핑’ 기술을 활용했다. 모델의 앞 또는 위에서 배경이 될 영상을 투사하는 기법이다. 스튜디오에 서 있는 모델에게 영상을 비춰 모델이 영상 속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모하비 브랜드 필름은 유튜브에 공개된 지 두 달 만에 조회수 791만 회를 넘었다. “외제차 광고처럼 감각적”이라는 댓글들이 달렸다. 광고주인 기아 측도 만족스럽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이노션 관계자는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시장에 최근 3040세대가 유입되고 있다”며 “새로운 촬영 기법이 브랜드 이미지를 젊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애틀랜타 원격 촬영
미국 등 해외 유명인사가 광고모델일 때도 해외 촬영이 필요하다. 광고업계가 선택한 방법은 원격 촬영이다. 현지 촬영업체를 섭외, 한국과 실시간으로 연결해 원격으로 촬영 지시를 내리는 방식이다.

제일기획은 지난해 9월과 올해 초 삼성전자의 갤럭시 S20 팬에디션(FE)과 S21 광고를 원격 촬영으로 제작했다. 온라인 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의 여주인공인 배우 밀리 바비 브라운을 내세운 갤럭시 S20 FE 공개 영상이 대표적이다. 미국 애틀랜타의 스튜디오에 바비 브라운과 현지 촬영 담당자들이 모인 시간, 서울 신사동 스튜디오에선 삼성전자와 제일기획 담당자들이 함께 모니터링을 했다.

제일기획 관계자는 “현지에 맞추느라 한국시간으로는 새벽이었지만 현지 카메라와 원격으로 연결된 화면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추가 촬영을 주문했다”고 설명했다.

내부에서는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냈다고 평가한다. 10명 안팎의 담당자들이 해외 출장을 가는 기존 방식보다 비용과 시간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시회·언박싱도 디지털로
광고대행사들은 기업의 오프라인 전시장을 VR로 꾸몄다. HS애드는 LG전자의 프리미엄 브랜드 ‘LG 시그니처’의 가전을 소개하는 가상 전시장을 구현했다.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쏟아지는 폭포 사이로 전시장 입구가 나타난다. 전시장에선 냉장고 등 가전을 360도 회전하며 볼 수 있다.

제일기획은 코로나19 사태 전 갤럭시 시리즈 신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갤럭시 팬 파티’ 등 오프라인 행사를 운영해왔다. 올해 신제품인 갤럭시 S21 출시 때는 이 같은 행사를 유튜브 영상으로 전환했다. 개그맨 유재석과 EBS 인기 캐릭터 ‘펭수’ 등을 섭외해 갤럭시 S21을 소개하는 언박싱 생방송을 했다.

모바일의 파급력은 오프라인보다 컸다. 언박싱 콘텐츠 등을 생중계하는 동안 최고 동시 접속자 수는 17만 명을 넘었다. 제일기획 관계자는 “2019년 갤럭시 노트10 출시 때는 약 3000명을 초청해 팬 파티를 열었는데 모바일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제품을 소개할 수 있게 됐다”며 “코로나19 이후에도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한 마케팅을 계속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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