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뚜기가 풀무원에 B2B(기업 간 거래) 형태로 주기로 한 들기름 공급을 일방적으로 중단해 논란이 일고 있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풀무원은 지난 23일부터 판매하고 있는 신제품 '생가득 들기름 막국수' 소스에 오뚜기의 계열사 오뚜기제유가 만든 들기름을 납품받아 사용했다. 하지만 출시한 지 나흘째인 26일 오뚜기는 풀무원 측에 "초도 물량 제외하고 4월 중순부터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통보했다.
식품업계에서 막 생산을 시작한 신제품의 재료 공급 계약을 공급사가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일은 드물다. 제품 출시 후 최소 3개월에서 1년은 공급하는 것이 관례였던만큼 상도덕에 어긋난다는 얘기도 나온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오뚜기제유의 일방적 계약 해지 통보는 오뚜기 내부의 B2B 영업부문과 B2C 영업부문의 불협화음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발단은 오뚜기 신제품의 공식 출시일로부터 일주일 앞서 풀무원이 선보인 '생가득 들기름 막국수'였다. 오뚜기제유 경영진들은 "올해의 주력 제품으로 고기리막국수와의 협업 제품이 나오는데 똑같은 들기름을 경쟁 제품에 원료를 납품하는 건 영업기밀을 제공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입장을 실무 측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입장이 곤란해진 오뚜기제유 쪽 B2B 영업 담당자는 풀무원에 일방적 계약 해지를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뚜기의 B2B 매출은 전체의 40%대로 국내 대형식품제조사 중 가장 높다. "오뚜기에서 판매하는 제품 수를 오뚜기 직원도 다 모른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외식업체와 식품업체에 납품하는 B2B 소스와 양념 시장에서 독보적 1위다.
들기름의 새로운 공급처를 찾아야 하는 풀무원으로선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준비 기간을 충분히 주지 않고 자사 제품이 출시됐다는 이유로 일방적 계약 해지 통보를 받으면서 안그래도 '품귀 현상'을 빚고 있는 들기름을 공수하는 데 진땀을 빼고 있다. 실제 OEM 방식으로 이 제품을 제조하고 있는 풀무원의 협력사 세진식품은 공장 설비를 당장 운영 중단해야 하는 위기에 처했다.
오뚜기는 계열사 오뚜기제유에서 들기름 제품을 생산한다. 오뚜기제유는 들기름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30% 이상을 차지하는 1위 회사인 데다 이외 나머지는 주로 영세한 식품회사들이 생산하고 있어 풀무원은 대체재를 찾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국내 들기름 시장은 도소매 시장을 합쳐 약 280억원 규모다. 참기름보다 시장 규모가 적어 B2C 시장만 존재하다시피 했지만 B2B에서도 찾는 수요가 늘면서 최근 시장이 급격히 커졌다. 수요는 늘었지만 점점 올라가는 들깨가격이 기업들에겐 큰 부담이다. 수입산 들깨 가격은 20㎏ 기준으로 지난해 4만9827원에서 올 들어 5만7330원으로 15% 이상 올랐다.
오뚜기 관계자는 "자사 제품인 오뚜기X 고기리 들기름막국수에 들기름을 납품하기도 빠듯해 풀무원 측에 공문을 보냈다"며 "들깨 가격 상승으로 생산량을 맞추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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