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공직자를 대상으로 한 이해충돌방지법을 제정하면서 국회의원은 ‘헌법기관’이라는 이유로 별도 심의·처벌 기준을 두려는 것으로 확인됐다. 공무원에게는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면서 정작 법을 제정하는 국회의원 처벌은 느슨하게 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31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야 지도부는 공무원의 이해충돌방지법 제정안 적용 대상에 입법·사법·행정부 공무원, 공공기관, 공립학교 교직원 등을 포함시키되 국회의원은 국회법을 개정해 관련 내용을 반영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이해충돌방지법은 정무위원회가, 국회법 개정안은 운영위원회가 논의한다.
운영위는 최근 국회운영개선소위원회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사적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과 재산사항 등을 등록하고, 안건 심사와 국정감사 등 입법 관련 업무에서 사적 이해관계자를 회피·기피해야 한다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에 잠정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 위반 심의와 징계는 국회의장 산하 자문기구인 윤리심사자문위원회를 확대·개편해 맡기기로 했다. 민간과 이해충돌 가능성이 있는 업무를 사전에 신고·회피하는 의무는 이해충돌방지법과 비슷하지만 심의·징계 주체는 다르다. 직무상 비밀 이용 금지 조항과 이를 위반했을 때의 형사처벌 규정도 국회법 개정안엔 빠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해충돌 여부를 국회가 자체 심의하고 ‘셀프 징계’한다면 실효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21대 국회 들어 제출된 12건의 징계안은 모두 계류돼 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4년간 47건의 징계안이 올라왔지만 징계는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았다. <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정부가 최초 이해충돌방지법안을 제출한 건 2013년 8월께다. 그로부터 약 8년동안 이 법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15년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이 제정될 당시에도 초안에 들어있던 이해충돌방지 조항은 ‘쏙’ 빠졌다. 하지만 “이번엔 다를 수 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를 계기로 공직자들의 투기 행위 등에 대한 분노가 거세게 일고 있어서다.
문제는 개별 헌법 기관인 국회의원을 규제하는 일이다. 국회의원은 법안을 심의하고 개정하는 권한 외에도 대정부 질문, 국정감사, 국정조사 등을 통해 국정 전반을 관할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지난 8년간 법제화되지 못한 주요 이유가 권한을 스스로 내려놓지 못하는 국회의원 때문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LH 사태로 분노한 민심을 목격한 여야 지도부는 국회법에 국회의원의 이해충돌방지 규정을 넣는 방안에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의원을 제외한 입법·사법·행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공공기관 임직원 등 나머지 공직자들은 이해충돌방지법의 적용을 받게된다. 2019년 국가공무원 인사 통계 기준 187만 명에 달한다.
국회법에 이해출동방지 조항을 넣기로 한 건 국회의원에 대한 징계 주체를 국회로 명시한 헌법 조항(64조2항) 때문이라고 여야는 항변힌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헌법기관은 일반 공무원들에 대한 규제와는 방식이 달라야 한다”(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는 설명이다. 여야 지도부는 현재 윤리특별위원회 소속 윤리심사자문위원회를 상설위원회로 격상시켜 법 위반 심의와 징계 여부를 맡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운영위 논의 과정에서도 “형사 제재 없이 자체 징계로 실효성을 확보하기 굉장히 어려울 것”(곽상도 국민의힘 의원), “셀프징계 논란을 불식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는 지적들이 나왔다.
직무상 비밀 이용 금지 조항과 이를 위반할 경우 형사처벌하는 규정이 빠진 것도 문제점으로 거론된다. 이해충돌방지법안은 이런 의무를 위반할 경우 최대 징역 7년 또는 7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해충돌방지법을 제정하는 이유는 기존 법이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라며 “최소한 법 위반 여부에 대한 심의는 국회에서 독립된 기관이 맡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사진)은 “공직에서 인사 업무만 30년 이상 담당했는데도 내용이 방대하고 헷갈린다”며 “인허가권을 가진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으로 애꿎은 국민들만 피해를 볼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근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태 징계가 대표적 예다. 박 의원은 “금융감독원장이 제재심의위원회에 참석하려면 본인과 배우자의 친인척 중 펀드 투자자가 있는지, 징계 대상 회사 직원 등 이해관계 여부를 사전 확인해야 한다”며 “민간과 이해관계가 얽힌 모든 행정 업무가 지연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