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뉴타운 사업이 계속됐다면

입력 2021-03-31 17:54   수정 2021-04-01 00:26

고지대에 있는 3885가구 대단지여서 마포에 살지 않아도 인근을 지날 때 꼭 눈에 띄는 아파트. 서울의 신흥 인기 주거지역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마래푸(마포래미안푸르지오)’다. 2003년 뉴타운으로 지정된 아현동에 가보면 상전벽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마래푸는 최근 새로 입주한 마포프레스티지자이(1694가구), 신촌그랑자이(1258가구) 등과 어우러져 강남 부럽지 않은 주거환경을 자랑한다.

마래푸의 원래 이름은 아현3구역. 언덕배기를 따라 집들이 빽빽하게 늘어선 서울의 대표적 달동네였다. 나무 여닫이문을 단 쌀가게, 대인 3500원의 요금을 받는 30년 된 목욕탕, 골목길을 누비던 15인승 마을버스는 2008년 모두 사라지고 2014년 9월 마래푸가 들어섰다.
도시재생이 주택 공급난 불러
이곳만이 아니다. 길음뉴타운, 왕십리뉴타운, 가재울뉴타운 등 강북의 인기 주거지역은 대부분 뉴타운이다. 강북은 아직도 강남에 비해 교통, 편의시설 등 인프라가 뒤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만약 뉴타운까지 없었다면 그 격차는 훨씬 더 컸을 것이다.

종로구 창신동에 가보자. 이곳은 2013년 뉴타운에서 해제된 뒤 도시재생지역으로 지정됐다. 주택가 담벼락에 벽화를 그리고 박물관을 만드는 등 보전에만 치중했다. 그 결과 작년 말 창신동 완구시장의 한 건물에 불이 났는데도 골목이 좁아 소방차가 진입하지 못했다. 옛 그대로면 보는 사람은 좋을지 모르지만 당장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큰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뉴타운 사업은 2002년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이 길음, 은평, 왕십리를 시범지구로 지정하면서 시작됐다. 계획도시로 개발된 강남에 비해 강북은 오래전부터 난개발된 주택이 많아 개발에 한계가 있었다. 완전히 엎어버리고 새로 짓지 않고서는 도로, 주차, 하수도 같은 인프라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물론 뉴타운 같은 대규모 개발은 폭력적인 철거 과정, 쫓겨나는 원주민과 세입자 등 분명한 그늘도 남겼다. 그러나 적어도 부동산 정책 측면에서는 최근 재평가를 받고 있다.
이제라도 공공개발 접어야
고(故) 박원순 시장이 “서민들의 피눈물을 흘리게 한 정책”이라며 2012~2018년 393곳의 뉴타운을 해제하지 않았다면 지금 같은 집값 급등은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번 정부의 25차례 부동산 대책에도 집값이 잡히지 않은 것은 공급 부족 때문이고, 뉴타운 해제는 도심 공급의 싹을 잘랐다. 이명박 정부(2008~2013년) 5년간 서울 아파트 가격은 13% 하락했다. 뉴타운에 힘입어 2010년 3만3825가구였던 서울 입주 물량이 2014년 5만1452가구까지 늘어난 영향이 컸다.

문재인 정부도 뒤늦게 잘못을 깨달은 것일까. 수요 억제에서 공급 확대로 정책 기조를 틀었고, ‘2·4 대책’ 등을 통해 뉴타운 해제 지역 등을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단 개발은 반드시 공공이 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는데, 때마침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투기 의혹이 터졌다. 그 결과 공공은 완전히 신뢰를 잃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공공개발을 그대로 밀어붙이겠다고 한다.

공과가 같이 있겠지만 민간 재개발인 뉴타운은 마래푸 같은 결과물을 내놨다. 반면 고집스러운 공공개발이 먼 훗날 무엇을 남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번 정부는 임기 5년간 어설픈 규제로 집값을 급등시키고, 국민에게 ‘세금 폭탄’을 맞게 한 것 외에 아무 일도 안 할 생각인가.

ventu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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