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벽 방패 필요없다…'K자매' 3연패 사냥

입력 2021-04-01 17:55   수정 2021-04-02 00:32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메이저대회 ANA인스퍼레이션(총상금 310만달러)이 열린 미국 캘리포니아주 랜초미라지의 미션힐스CC 다이나 쇼 코스(파72) 18번홀(파5)이 예전의 ‘악명’을 되찾았다. 사방이 호수에 둘러싸인 이 홀 그린 뒤에 설치한 파란색 ‘가설 벽’을 없애면서다. 2일 개막한 이 대회에 출전한 미국의 ‘베테랑’ 브리타니 린시컴(36)은 개막에 앞서 연습라운드를 마친 뒤 “정말 많은 공이 물에 빠졌다”며 “(예전처럼 18번홀이) 이 대회의 결과를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다시 발톱 드러낸 18번홀
파란색 가설 벽은 지난해 대회에서 펼쳐진 역전 드라마의 조연 역할을 했다. 당시 주최 측은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갤러리를 받지 못하자 관중석이 있을 자리에 가설 벽을 세웠다. 기존에 있던 관중석은 그린 절반을 가렸다. 가설 벽은 그린 뒤를 모두 가릴 정도로 훨씬 더 길었다. 성인 키를 훌쩍 넘을 정도로 높았다. 대신 벽에는 11개에 달하는 스폰서 로고가 빼곡히 그려졌다. 어려운 시기인데도 대회를 열게 해준 스폰서에 대한 LPGA투어의 배려로 보였다.

선수들은 가설 벽을 방패 삼아 그린을 마음껏 공략했다. 원래라면 딱딱하고 빠른 그린이 공을 뱉어내 그린 주변에 공을 보내 놓고 웨지로 ‘3온’을 노리는 게 정석이다. 하지만 높은 벽 덕분에 길게 쳐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공이 벽을 맞고 그린 위로 올라가는 장면도 연출됐다. 작년 우승자 이미림은 이 홀에서 두 번째 샷을 벽에 맞힌 뒤 칩샷으로 이글을 잡아 연장전에 갔고 우승까지 차지했다.

미국 언론으로부터 “메이저대회의 명성을 떨어뜨리는 처사”라는 강력한 비난을 받은 주최 측은 결국 올해 이 가설 벽을 없앴다. 원래 모습을 되찾은 18번홀 주변 호수는 예상대로 연습라운드부터 선수들의 공을 삼켰다. 넬리 코르다(23·미국)는 5번 아이언으로 그린을 공략하려다 공이 그린 뒤로 넘어가 실패했다. 제니퍼 컵초(24·미국)도 4번 아이언으로 두 번째 샷을 했다가 실패하는 등 수많은 선수가 18번홀 앞에서 고개를 저었다. ‘장타자’ 렉시 톰프슨(26·미국)은 “6번 아이언보다 긴 클럽을 잡아야 한다면 ‘3온’을 생각하고 끊어가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선수들은 대부분 가설 벽이 사라진 18번홀을 반기는 분위기다. 마리아 파시(23·멕시코)는 “18번홀에선 더 많은 생각을 요구한다”며 “더 높은 수준의 샷을 요구한다. 그래서 더 흥미롭다”고 말했다. 2010년 이 대회 우승자 쩡야니(32·대만)는 “이게 진짜 골프”라고 했다.

사라진 가설 벽이 흥미를 떨어뜨릴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마델레네 삭스트롬(29·스웨덴)은 “솔직히 (벽이 사라져) 경기가 지루할 것 같다”고 했다. 2온을 노리는 선수가 줄어들어 지난해와 같은 ‘역전극’이 나올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뜻이다.
‘컴퓨터 샷’ 고진영·박인비 2승 도전
대회 3연패에 도전하는 ‘K자매’들에겐 18번홀의 변화가 유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특히 선봉에 선 세계랭킹 1위 고진영(26)과 2위 박인비(33)에겐 더욱 그렇다. 박인비는 올해 81.9%의 그린 적중률을 기록해 전체 2위, 고진영은 81.7%의 그린 적중률로 전체 4위다. 두 선수 모두 장타보다는 정교한 아이언 샷을 무기로 삼는다.

고진영과 박인비는 1라운드에서 같은 조로 출발했다. 고진영은 2019년 이후 2년 만에 이 대회 정상 탈환을 노린다. 박인비는 2013년 이후 8년 만이자 2주 연속 우승에 도전한다. 미션힐스CC의 정식 회원인 전인지(27)도 홈그라운드에서 자신의 세 번째 메이저 타이틀에 도전한다. 그는 서명 없이 스코어카드를 제출했다가 실격당한 KIA 클래식을 제외한 3개 대회에서 모두 톱10에 이름을 올렸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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