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메이저대회 ANA인스퍼레이션(총상금 310만달러)이 열린 미국 캘리포니아주 랜초미라지의 미션힐스CC 다이나 쇼 코스(파72) 18번홀(파5)이 예전의 ‘악명’을 되찾았다. 사방이 호수에 둘러싸인 이 홀 그린 뒤에 설치한 파란색 ‘가설 벽’을 없애면서다. 2일 개막한 이 대회에 출전한 미국의 ‘베테랑’ 브리타니 린시컴(36)은 개막에 앞서 연습라운드를 마친 뒤 “정말 많은 공이 물에 빠졌다”며 “(예전처럼 18번홀이) 이 대회의 결과를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선수들은 가설 벽을 방패 삼아 그린을 마음껏 공략했다. 원래라면 딱딱하고 빠른 그린이 공을 뱉어내 그린 주변에 공을 보내 놓고 웨지로 ‘3온’을 노리는 게 정석이다. 하지만 높은 벽 덕분에 길게 쳐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공이 벽을 맞고 그린 위로 올라가는 장면도 연출됐다. 작년 우승자 이미림은 이 홀에서 두 번째 샷을 벽에 맞힌 뒤 칩샷으로 이글을 잡아 연장전에 갔고 우승까지 차지했다.
미국 언론으로부터 “메이저대회의 명성을 떨어뜨리는 처사”라는 강력한 비난을 받은 주최 측은 결국 올해 이 가설 벽을 없앴다. 원래 모습을 되찾은 18번홀 주변 호수는 예상대로 연습라운드부터 선수들의 공을 삼켰다. 넬리 코르다(23·미국)는 5번 아이언으로 그린을 공략하려다 공이 그린 뒤로 넘어가 실패했다. 제니퍼 컵초(24·미국)도 4번 아이언으로 두 번째 샷을 했다가 실패하는 등 수많은 선수가 18번홀 앞에서 고개를 저었다. ‘장타자’ 렉시 톰프슨(26·미국)은 “6번 아이언보다 긴 클럽을 잡아야 한다면 ‘3온’을 생각하고 끊어가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선수들은 대부분 가설 벽이 사라진 18번홀을 반기는 분위기다. 마리아 파시(23·멕시코)는 “18번홀에선 더 많은 생각을 요구한다”며 “더 높은 수준의 샷을 요구한다. 그래서 더 흥미롭다”고 말했다. 2010년 이 대회 우승자 쩡야니(32·대만)는 “이게 진짜 골프”라고 했다.
사라진 가설 벽이 흥미를 떨어뜨릴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마델레네 삭스트롬(29·스웨덴)은 “솔직히 (벽이 사라져) 경기가 지루할 것 같다”고 했다. 2온을 노리는 선수가 줄어들어 지난해와 같은 ‘역전극’이 나올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뜻이다.
고진영과 박인비는 1라운드에서 같은 조로 출발했다. 고진영은 2019년 이후 2년 만에 이 대회 정상 탈환을 노린다. 박인비는 2013년 이후 8년 만이자 2주 연속 우승에 도전한다. 미션힐스CC의 정식 회원인 전인지(27)도 홈그라운드에서 자신의 세 번째 메이저 타이틀에 도전한다. 그는 서명 없이 스코어카드를 제출했다가 실격당한 KIA 클래식을 제외한 3개 대회에서 모두 톱10에 이름을 올렸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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