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비상 중대재해법 뒤의 수혜자…규제의 역설 [여기는 논설실]

입력 2021-04-02 08:39   수정 2021-04-02 15:36


몇 년째 기업규제가 거칠어지고 심화되고 있지만, 산업현장에서 피부로 느끼는 단연 1위의 규제법은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일 것이다. 이 법에 대해서는 기업인과 경제계 뿐 아니라 법조계의 많은 전문가들도 과잉입법이라며 강한 문제 제기와 함께 우려를 표시해 왔다. 7개 경제단체는 최근까지도 한 목소리로 시행 전 보완을 일관되게 요구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고, 손해 피해 그룹이 있으면 상대적으로 이득을 보는 쪽도 있는 게 세상살이인 것 같다.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고용노동부 직원들은 잘 나간다고 한다. 내년 1월 법 시행을 앞두고 산업계에 비상이 걸리면서 이 법의 주무부처인 고용부 공무원들 몸값이 확 오른 것이다. 산업 생산 현장에서 ‘중대재해’를 일으킬 경우 최고경영자(CEO)를 직접 처벌하는 것이 이 법의 골자다. 그냥 처벌이 아니라 1년 이상 징역이라는 하한형의 중형이다. 원청과 하청, 도급 등의 관계로 생태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산업현장의 현실을 감안하면 기업 경영인들의 두려움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이 간다.

웬만한 기업에서는 중대재해 관련 관변전문가들을 급히 ‘모셔야’ 할 입장이 됐다. 이런 일에 민감하게 움직이면서 사전 대비하고 대응까지 하는 곳이 로펌이다. 사전 법률자문을 해 주면서 사고 발생할 경우 법적 대리에 나서는 게 로펌의 주된 업무다.

로펌으로서는 큰 시장 하나가 새로 형성된 셈이다. 하지만 기존의 변호들만으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다. 사망자 발생 같은 중대재해에 대한 판단, 원청기업·발주기업 등의 과실 여부와 정도, 재해 근로자의 자기 과실 등에 대한 조사를 고용부가 한다, 고용부 산하의 수많은 지방노동청 조사 담당 공무원들이 그들이다. 한국 행정 조직상 여러 지방청의 공무원은 직급이 높지가 않다. 하지만 실무자들인 이들에 의해 중대재해 판단이 좌우된다. 그러니 로펌 등에서 고용부 직원 모시기에 나설 수밖에 없다. 고용부 전·현직 몸값이 오르는 게 당연하다.
◆재해조사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
고용부 출신 인력 확보전이 벌어질수록 직접 조사 담당자가 아니어도 재취업의 좋은 기회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같은 고용부 내에서 근무하면 자연히 인적교류가 형성되고, 선후배끼리 끌어주고 밀어주는 것은 굳이 공직이 아니더라도 한국의 풍토다. 로펌을 이런 점을 노려 노동과 산업안전 전문 변호들이 할 수 없는 틈새를 인력보강으로 계속 메꾸려 들 것이다. 다 ‘사람이 하는 일’이고 ‘인간관계’에 많이 좌우될 때가 많다.

한동안 공정거래위원회 출신들의 몸값이 높았고 로펌 등으로 재취업 기회가 많았다. 공정위에서 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할수록 공정위 공무원들을 스카웃하려는 로펌의 발걸음도 바빠졌다. 조사여부에 따라 막대한 과징금이 뒤따르는 것을 감안하면 기업에서는 법률대응 비용은 상대적으로 큰 비용도 못 된다. 웬만한 로펌에 가면 공정위 출신이 포진하지 않은 곳이 없다. 그들이 무슨 불법 로비나 탈법 대응을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현직에서의 조사경험을 사는 것이다. 그들의 선후배 상하관계를 활용해 현직(공격수)과 연결 창구를 만들고 더 많은 설명과 해명의 기회라도 갖자는 것이다. 장·차관 등 고위직 출신들이 로펌이나 회계펌에서 하는 것도 현직들에게 ‘겨우 전화 한 통화’하는 정도 아닌가. 법조계의 해묵은 적폐라는 전관계우도 그런 것 아닌가. 변호인으로 특정 누구의 도장 하나로 통하는 것 아닌가.
◆규제 공고해질수록 집행자 몸값 올라…고용부도 빛보나
고용부는 그동안 경제부처도 아니면서 사회부처도 아닌, 한편으로는 경제관련 부처회의가 열리면 포함되고 사회관련 장관회의가 열리면 그쪽에도 들어갔다. 고용부 공무원들은 퇴직 후에도 일자리가 많은, 좀 더 직접적인 경제 부처가 부러웠을지 모른다. 노무사 같은 재취업의 길도 없지는 않았지만,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산업부 공정위 같은 곳에 비하면 보상이 큰 로펌행도 활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산업안전법에 이어 중대재해처벌법까지 시행되면서 달라졌다. 규제가 낳은 공직과 관변의 이면이다. 2000년대 이후 공무원들 사회에서 공정위의 인기도 상승을 보라. 행시수석 합격자가 공정위를 택했다고 해서 화제가 된지도 이미 한참 됐다. 규제가 강할수록 공직자들의 힘도 세어진다. 문제는 현직 담당자의 권한만 세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재취업 조건까지 급상승하게 돼 있다. 퇴직자들 몸값까지 올라갈 것이다. 규제가 거칠어지고 강해질수록 규제를 움켜 쥐 규제의 기득권은 공고해지고 ‘규제생태계’로 인한 새로운 먹이사슬이 형성되는 것이다. 전관예우라는 한 마디로 다 설명도 못할 지경이다. 이런 ‘신(新)한국 관가 풍속도’는 훗날 어떻게 평가받게 될까.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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